'경제민주화'의 여파로 국내 식품·외식업계 전반에 중소상인과 대기업 간 갈등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에는 계란유통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올 초 동반성장위원회가 베이커리 및 외식업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중소상인들이 승기를 잡자 식자재유통업을 비롯해 햄버거·피자·커피업종에 대한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움직임이 이어졌고 최근에는 축산전문 대기업 하림의 계란유통업 진출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의 생존권 침해를 막아야 한다"는 중소상인 측 주장과 "시장경쟁 원리에 어긋나는 대기업 규제는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소비자 편익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대기업 측 주장이 계속 대립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계란유통업계의 중소상인단체인 대한양계협회와 한국계란유통협회 회원사들은 1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하림 계란유통 사업진출 규탄대회'를 열고 하림의 계란유통업 진출 철회를 요구했다. 앞서 한국계란유통협회는 지난해 말 동반위에 계란유통업에 대한 중기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으며 동반위가 아직 검토 중이다.
하림은 지난달 말부터 친환경 인증 사육농가로부터 공급받은 무항생제 계란을 '자연실록' 브랜드로 판매하는 계란 유통사업에 뛰어들었다. 자연실록 계란은 1등급란과 특란, 대란 등 3종류이며 하림 대리점을 비롯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통해 판매된다.
김재홍 대한양계협회 경영지원부장은 "4조원대 매출로 육계와 양돈에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인 하림이 계란유통업까지 진출하면 산란계 농가와 소규모 유통상인들이 생존에 위협을 받을 것"이라며 "하림이 계란유통업 진출을 철회하지 않으면 하림 전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하림 측은 "국내 계란유통업의 낙후된 구조 때문에 계란 유통 판로 확보 및 품질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양계농가들과 상생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계란유통사업을 준비해 왔다"며 "산란계를 직접 키울 계획도 없기 때문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대기업의 독과점 우려는 지나친 것"이라고 해명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계란시장 규모는 지난 2010년 1조 2,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 3,000억원 규모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CJ제일제당·풀무원·오뚜기 등 식품 대기업들이 전체 시장의 약 4% 수준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계란산업은 수급조절이 쉽지 않고 비축이 불가능한 계란의 특성 때문에 유통단계에서 도매상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만들어져 있다는 게 식품업계의 분석이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들의 계란유통사업은 양계농가와 직거래를 통해 유통구조를 개선할 수 있고 양계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확보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대기업의 시장 참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달 초에는 커피·햄버거·피자 업종 중소상인들의 단체인 휴게음식업중앙회가 이사회를 열어 해당 업종을 동반위에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 신청하기로 하고 내년 1월 커피업종부터 신청하기 위해 관련 작업을 준비 중이다. 또한 중소상인단체인 전국유통상인연합회는 지난 9월부터 식자재유통 사업을 중소기업적합업종으로 지정 신청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라 해당 업종을 둘러싸고 대기업-중소기업 간 골목상권 침해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해를 넘기고도 핫이슈가 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