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에너지 황금비율 찾아라] <5> '제5의 에너지' 수요관리

공급위주 정책 한계… 가정·상업부문 효율 개선에 초점을<br>대기업 전력감축 요청 등 위기마다 땜질처방 급급<br>'공급자 효율향상 의무화' 미국식 관리제 도입 필요<br>가격 구조 왜곡시키는 전기료도 현실화해야

윤상직(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지난 6월13일 서울 용산역 대합실에서 열린‘2013년 여름철 국민 절전 캠페인 출범식’에 참석, 대형 부채를 부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전기전략 운동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경제DB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스는 2009년 불ㆍ석유ㆍ원자력ㆍ신재생에 이은 제5의 에너지로 '에너지 절약'을 꼽았다. 절약이 곧 생산이라는 이 화두는 전세계 에너지 정책에 큰 영감을 줬다.

우리 정부도 꾸준히 에너지 절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했다. 2008년 국가 에너지기본계획에서도 높은 수준의 에너지 절감 목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목표만 화려했을 뿐 근본적으로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 틀은 바꾸지 못했다. 에너지 요금을 지속적으로 억눌렀고 효율 향상 사업은 등한시했다. 이런 가운데 공급의 기둥인 원자력이 흔들리자 속수무책으로 초유의 전력난을 맞고 말았다.


이제 공급 중심의 에너지 정책은 한계에 봉착했다. 송전망 하나를 짓겠다고 주무부처 장관까지 매달릴 정도로 설비 증설이 쉽지 않다. 에너지를 아끼는 수요관리 정책의 혁신이 필요한 때라는 얘기다. 이성인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인센티브와 수요 억제를 위한 가격 시그널이 망가져 있다"며 "앞으로 에너지 정책에서 공급과 수요 정책의 비중을 최소한 동일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말했다.

◇위기 넘기기 급급한 수요 정책 시스템=수요관리는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것과 피크 때 일시적으로 부하를 낮추는 것을 통틀어 말한다. 물론 전체적인 효율 개선이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는 예측하지 못한 전력난에 자주 부딪히다 보니 순간적인 부하를 낮추는 수요관리에 너무 매달려 있었다.

전력난이 찾아올 때마다 대기업에 전력 감축을 요청하고 이에 따른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은 조업 시간을 조정해 일시적으로 전력 사용량을 줄이면서 이득을 챙긴다. 2010년 이후 전력 수급 상황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가운데 지난해에만 전력수급경보가 75회나 발령됐고 비상 수요관리 예산이 4,000억원에 가깝게 쓰였다.

문제는 이 같은 비상 수요관리가 단지 그때의 위기만 넘기는 임시 방편이라는 점이다. 수천억원의 세금을 썼는데 기업의 에너지 효율이 향상된 것도 아니고 전력난이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도 아니다. 국책연구소의 한 전력정책 전문가는 "사실상 허공으로 날아간 돈"이라며 "그 돈을 진작 에너지 효율기기 보급에 썼으면 국가에 전체적으로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땜질 식의 대책이 반복된 것은 정부의 수요관리에 대한 의지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력수급계획 등을 통해 적극적 수요관리 목표를 설정하고도 공급 위주의 사고에 갇혀 막상 수요관리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이지 못했다.

◇가정ㆍ상업 부분 에너지 효율개선 프로그램 부족=우리 정부의 에너지 수요관리 대책은 주로 대기업의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온실가스ㆍ에너지 목표관리제 등을 통해 산업 부문에서 에너지 절감이 상당히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정ㆍ상업 부문의 에너지 절감을 위한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의 에너지 고효율 제품 소비를 견인할 인센티브도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사업 부문에서는 신축 건물의 에너지 효율 개선이 이뤄지고 있으나 전체 건물의 97%를 차지하는 기존 건물의 에너지 효율 향상 방안이 크게 부족하다. 건물 부문의 에너지 소비량은 지난 2010년 기준 22~24%에 달하는데 2030년까지 연평균 2.1%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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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가정ㆍ상업 부문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해 미국이 운영하는 '에너지공급자 효율향상 의무화제도(EERS)' 등과 같은 강력한 수요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EERS는 정부가 에너지공급자에게 에너지 절감 목표를 부여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공급자가 고객을 대상으로 효율 향상 기기 등을 보급하는 제도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범칙금 부과 등 페널티가 주어진다. 전문가들은 국내 에너지 시장의 특성에 맞춰 가정ㆍ상업 부문에 강력한 에너지 효율 향상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성인 연구위원은 "국내 전력 시장의 여건상 미국처럼 에너지 공급자에게 역할을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직접 재원을 확보해 가정ㆍ상업 부문 에너지 효율 향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원가 이상의 수요 관리형 가격 정책 필요=수요 관리의 핵심은 결국 가격이다. 가격이 원가 이하로 유지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수요 관리 프로그램도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 아무리 정부가 에너지 효율을 강조해도 에너지 가격이 싸다면 산업계도 일반 국민도 에너지를 절감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

그간 우리나라의 에너지 가격 정책은 시장 실패를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가격구조를 왜곡시켜 에너지 소비의 비효율성을 초래해왔다. 가장 큰 문제는 원가 이하로 유지되는 전기요금이다. 에너지 전환 손실이 매우 큰 전기 사용이 급증하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에너지 낭비가 심해지고 있다.

에너지 가격 조절을 위해 다양하고 복잡한 조세 및 부과금이 부과되고 있지만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 석유에 과세가 집중되는 반면 석탄과 전력 등에는 전혀 과세되지 않고 있다.

원가의 개념도 모호하다.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ㆍ환경적 비용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어디까지 반영해야 할지 정리되지 않고 있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정부가 앞으로 원가 이상의 수요 관리형 요금체계를 설계하면서 이를 통해 확보되는 재원을 에너지 효율 향상 사업에 투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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