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김영삼 정부 4년(사설)

김영삼 정부가 오늘로 4년째를 맞는다. 4년 전 이날 「변화와 개혁」 「제2의 건국」을 기치로 국민적인 기대와 환호 속에 출범했던 김영삼 정부였다. 그런 정부가 지금 정권의 위기 차원이 아닌 국가의 위기를 걱정케하는 참담한 지경에 빠져 있다.현정부의 실정은 무엇보다 경제에 대한 안이한 대응에서 비롯되었다. 경제정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른바 「신경제 5개년 계획」이라는 거창한 정책목표가 제시됐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세마리의 토끼중 제대로 잡은게 하나도 없이 임기 마지막해인 올해도 최악의 경제난국이 예고돼 있다. ○최대실정 안이한 경제대응 신경제 5개년 계획대로였다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경상수지 21억달러 흑자에 순외채는 60억달러여야 했지만, 실제로는 경상수지 2백37억달러 적자에 순외채 2백43억달러로 곤두박질쳤고 총외채는 사상최악인 1천억달러를 넘었다. 현정부가 처음부터 경제정책이 있었는지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몇몇 측근들의 탁상공론이거나 선거구호 성격의 수치를 정책으로 둔갑시킨 것이 신경제 5개년 계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년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마당에 5년 앞을 내다보기가 쉽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경제가 나빠질 조짐은 이미 초년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음에도 대책없이 방치하다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그 점에서 김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김대통령은 정치적 성공 여부는 경제성적표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과거 군사정부의 정치적 실패는 상당부분 경제에서의 성공으로 덮어졌다. 지금도 정치·사회적으로 아무리 불안하더라도 경제만 원활히 굴러간다면 국민들의 불안은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김대통령은 취임초부터 세마리 토끼중 한마리라도 확실히 잡는다는 자세로 정책을 독려했어야 했다. ○퇴색한 「1전도 안받아」 김대통령이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공직부패척결도 같은 평가를 면키 어렵다. 『나는 재임중 기업인들로부터 단1전의 돈도 받지 않겠다』는 말은 김대통령의 집권 키워드였다. 김대통령은 단1전도 안 받겠다고 했을 때 자신의 솔선수범을 정치인이나 관리들이 따라줄 것으로 믿었을지 모른다. 최소한 자신의 분신과 가신들만은 자신처럼 행동해줄 것으로 믿었을 것이다. 한국적 현실에서 정치인들의 뇌물수수행위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쉽게 근절되기는 어렵다. 측근들의 이권개입 소문은 정권초기부터 줄기차게 제기돼왔고 김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행적은 끊임없는 소문의 진원이었다. 홍인길 의원은 청와대 총무수석 때인 95년과 96년에 한보로부터 10억원을 받은 것으로 검찰조사에서 밝혀졌다. 가신들의 처신에 일대 경종을 울렸음직한 95년 장학로 청와대비서관의 수뢰혐의 구속 뒤에도 그는 한보로부터 유유히 뇌물을 받았던 것이다. 측근인사들의 비리소문은 추적 가능한 것이고 그같은 검증이 있었다면 비리의 상당부분은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에서 김대통령은 관료나 정치인들의 금품수수행위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엄격하게 작동시켰어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기가 기업인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유에 대해 『정치자금의 창구를 대통령한테 일원화하는 것이 기업의 부담을 더는 길이라고 여겼다』고 궤변을 했지만 거기에도 반면의 진실은 있다. ○개혁후퇴 침묵한 대통령 김대통령의 세번째 실책은 개혁의 후퇴 및 변질이다. 최대의 경제개혁으로 꼽히는 실명제는 차명거래를 합법화해 구멍이 뚫린 채고, 국회는 돈 안 드는 선거를 위해 마련된 선거법중 연좌제를 없애버렸다. 정치자금법 역시 정치인이 대가없이 받는 돈은 금액의 다과를 불문, 떡값으로 처벌받을 수 없게 개악됐다. 노동법개정을 둘러싼 날치기처리 과정에서 개혁정신의 후퇴와 변질은 여실히 드러났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처럼 여론을 무시한 법의 제정이나 개정에 대해선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는데 김대통령의 경우 개혁법안들의 변질 과정에 이렇다 할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혁의 일환으로 군부와 공직사회에 대한 사정도 추진되었지만 편파적인 사정의 시비는 끊이지 않았고 사정의 결과로 비워진 자리들이 지연과 학연에 의해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 본래 의지를 퇴색시켰다. 이로써 「인사가 만사」라던 김대통령의 인사정책은 「인사가 망사」라는 비판을 초래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임기 1년을 남겨놓은 상태이고 이제까지의 실패를 거울삼아 마무리를 잘하면 어느 정도 만회할 기회는 있을 것이다. 오늘 발표되는 김대통령의 담화는 그래서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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