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에너지 황금비율] <7·끝> 20년 내다보는 정책

시장논리로 에너지 비전 설계… 후대에 부담 전가 벗어나야<br>공기업 독점구조 깨부수고 전력판매·천연가스 도입 등<br>민간영역 활용 방안 모색… 전기요금 인상 공론화 위한 비용산출 시스템도 마련을


대한민국이 압축성장을 통해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룬 데는 이를 전략적으로 지원한 에너지 정책의 힘이 컸다. 공기업 독점 방식의 에너지 보급과 인위적으로 억누른 에너지 가격은 어느 시점까지는 분명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급속히 달라졌다. 시장논리를 무시한 에너지 정책의 부작용은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잇따라 터진 원전 비리와 전력수급 위기, 송전망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특정 집단의 문제로 치부될 일이 아니다. 균형을 잃어버린 에너지 시장에서 정부가 통제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하반기 2차 국가 에너지기본계획(국기본) 발표를 앞둔 가운데 정부가 정치색을 버리고 실적인 에너지 정책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맛에 맞게 수정되고 미래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의 에너지 정책은 우리 성장의 동력이 되기는커녕 혼란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과도한 정치색에 떠넘기기 식 에너지 정책=지금까지 우리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색이 너무 과하게 개입됐다는 점이다. 지난 2008년 1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 '녹색성장'이라는 정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목표 비중을 과도하게 높인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원전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체계적 분석도 좁은 국토 안에서 신재생의 실현 가능성도 장밋빛 목표 뒤에 구겨 넣어졌다. 이러다 보니 20년을 내다보고 설계한다는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은 5년도 안 돼 대거 수정될 위기에 놓였다.

정부는 하반기 발표할 2차 국기본에서 다시 원전의 목표 비중을 줄이고 신재생 비중을 확대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현실성이다. 국기본 작업에 참여했던 한 에너지 정책 전문가는 "현 시점에서 정치권 코드에 맞추기 위해 신재생의 비중을 과도하게 높인다면 이 역시 미래 세대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며 "기술개발 가능성, 규제완화 여지 등을 고려해 보다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를 들고 와야 한다"고 말했다.


◇공기업 독점구조 한계…민간 영역 활용 방법 찾아야=공기업 독점방식의 에너지 정책도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대야 할 영역으로 꼽힌다. 공기업 중심의 에너지 보급과 해외 자원개발 정책은 공기업의 막대한 부채와 맞물려 이미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대형 원전 비리를 불러온 한국수력원자력의 폐쇄적인 사업 구조와 막대한 손실을 입은 해외자원개발 사업들 역시 공기업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파생된 부작용이라고 볼 수 있다.

관련기사



그동안 효율적인 에너지 보급과 기술 자립을 위해 공기업 몰아주기 식의 에너지 정책을 펼쳤다면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민간의 영역을 넓히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천연가스 민간 직도입 허용, 민간 발전 비중 확대, 전력판매 시스템 경쟁체제 도입, 해외 자원개발 포트폴리오 재설계 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정부도 이 같은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지만 관료사회와 공기업이 워낙 끈끈히 연결돼 있다 보니 기존의 틀을 제대로 깨부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현 정부가 정치권을 등에 업고 시장개방을 저지하는 공기업 노조의 저항을 뚫고 나갈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대욱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산업 민영화를 비롯해 모든 경쟁 시스템 도입이 멈춰져 있는 상태"라며 "에너지 시장에 경쟁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민간의 참여를 단계적으로 늘릴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금 문제 공론화 위한 객관적 시스템 필요=에너지 정책을 주도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산하 에너지절약추진단의 이름을 에너지수요관리정책단으로 바꿨다. 공급 위주의 에너지 정책에서 수요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다양한 에너지 절감 정책들을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곁다리만 집는 수요관리 정책만 갖고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말을 쓰기는 무색하다. 수요 폭증을 불러오는 저렴한 에너지 가격을 손대지 않고는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바꾸기가 힘들다. 특히 에너지 전환 손실이 높은 전기요금 체계 개선은 2차 국기본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로 꼽힌다. 정부도 줄곧 요금인상의 필요성은 강조했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 이를 공론화하는 작업에는 미숙했던 것이 사실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지금부터라도 발전소 등 전력설비 건설에 따른 사회ㆍ환경적 비용을 객관적으로 계산해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중장기적으로 원가에 반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각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세제개편 등을 통해 에너지 요금 역전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도 찾아봐야 한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전력정책연구실장은 "개인의 희생을 대가로 국가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전력공급 등에 따른 다양한 비용을 제대로 반영해내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