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열없는 줄 모르는 사람들


길바닥을 본다. 시커먼 껌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심지어 방금 깐 보도블록도 그렇다. 그 지저분한 모습을 바라보면 얼굴이 찌푸려진다. 씹던 껌을 바닥에 뱉을 때 열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산길을 걷다가 쓰레기가 흩어져 있는 것을 자주 본다. 대부분 그냥 내버려두고 지나간다. 나도 그렇다. 그러다가 가끔 산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다. 버릴 곳까지 들고 갈 때 영 겸연쩍다. 내가 수고해 여러 사람을 기분 좋게 하니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주워도 될 것 같은데 괜히 열없다.

'열없다'는 '좀 겸연쩍고 부끄럽다'는 뜻을 지닌 말인데 돌이켜 보면 주변에는 열없는 행동이 뜻밖에도 많다.


도심을 걷다 보면 보행자용 교통신호등이 있을 곳이 아닌데 설치된 것이 자주 보인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곳, 건널목 너비가 좁아 굳이 신호등이 필요 없는 곳에 신호등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빨간 불이 들어와 있지만 다니는 차가 없으니 그냥 건너가기도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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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적한 시골길 신호등에 빨간 불이 켜져 있다. 나는 대개 그냥 간다. 뒤통수가 가렵다. 빨간 불일 때 건너면 안 된다고 배운 것이 머리에 박혀서 그런지 마음이 편치 않다.

오래 전 방송에서 제작진이 교차로나 횡단보도를 몰래 지켜보고 있다가 빨간 신호등에 우직하게 차를 세우고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사람에게 상품을 주는 한 프로그램을 본 적 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 신호등을 달아놓고 지키는지 숨어서 지켜볼 게 아니다. 필요 없는 보행신호는 없애고 한적한 길에는 깜빡이를 설치하는 게 옳다. 국민을 괜히 열없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년에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여야 국회의원은 특권을 없애겠다는 약속을 많이 내걸었다. 겸직을 막고 의원연금을 제한적으로 없애는 것을 뼈대로 한 국회의원들의 '특권 내려놓기' 법안이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국 물거품이 됐다. 지난 대선 때부터 정치 쇄신 차원에서 추진해온 각종 법안을 국회에 계류시켜놓은 채 시간만 보낸 탓이다. 자기 입으로 약속했지만 스스로 발을 찍는 일을 적극 추진하기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선거 때에 표를 얻으려고 약속해놓고 그때가 지났다고 해서 자기 입을 뱉은 말을 행동에 옮기지 않는 것은 열없는 짓이다.

열없어야 하는 것, 열없을 이유가 없는데 괜스레 열없게 느끼는 것, 잘못된 제도 때문에 애꿎게 열없게 되는 것, 열없어야 하는데 뻔뻔하게도 그러지 않는 것. 그중에서 열없는 짓인데도 열없는 줄 모르는 것이 문제다. 어떻게 해야 열없는 짓이란 걸 알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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