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 블로그] 김광수 기자의 ‘아! 차!’(15)

미국용 에쿠스에 없는 이것은?





영국산 럭셔리 세단의 자존심 재규어. ‘아름답고 빠른 자동차(Beautiful Fast Car)’를 지향하는 재규어는 이안 칼럼이 디자인을 맡으면서 확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클래식한 디자인에서 우아함을 살린 외관으로 재탄생한 현재의 디자인은 세계적으로도 호평을 받고 있죠.

개인적으로 과거 디자인이 맘에 들었던 부분이 있는데요. 바로 보닛 전면에 재규어가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듯한 모습으로 달려 있던 특유의 엠블럼입니다. 맹수 재규어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해 ‘리퍼(Leaper)’라고 불리던 장식은 누구나 재규어 브랜드하면 떠올렸던 것입니다. 이 상징물은 2010년 신형 XJ부터 그릴 속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크롬 메시 그릴에 재규어가 포효하는 모습을 담은 원형 엠블럼은 ‘그롤러(Growler)’라고 불리는데요. 역동적인 재규어의 모습은 트렁크쪽에 2차원으로 대신 자리잡고 있죠.


재규어가 엠블럼을 변형한 것이 포드자동차에서 타타자동차로 소유권이 넘어가고 이안 칼럼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차를 바꿔서만은 아닙니다. 재규어가 사람을 해칠 수 있다는 지적때문인데요.

살아있지도 않은 재규어, 그것도 고작 차에 달려 있는 작은 장식품이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사고가 났을 때입니다. 정면 충돌 시 보행자에게 2차 충격을 가하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죠.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관련 규정이 없지만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 2000년대 이후 보행자보호법이 강화돼 보닛 위에 장식물 설치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재규어도 이런 지적에 따라 새롭게 차량 디자인을 바꾸면서 클래식한 장식품에 변화를 줬다고 합니다.


재규어 만큼이나 차량 보닛의 장식이 유명한 브랜드가 있죠. 바로 같은 영국산 명차 롤스로이스인데요. 이 차에 보닛에는 ‘환희의 여신상(Spirit of Ecstasy)’으로 불리는 장식물이 달려 있습니다. 환희의 여신상은 영국의 조각가 찰스 로빈슨 사이크스가 롤스로이스 대주주였던 존 몬테크의 비서이자 연인인 엘리노어를 모델로 1911년 제작했는데, 마치 하늘을 나는 여인의 형상같다고 해서 ‘플라잉 레이디(Flying Lady)’라고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사이크스는 환희의 여신상이 롤스로이스에 장착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사고로 죽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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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규어는 장식물이 사라졌는데, 롤스로이스는 어째서 그대로일까요

재규어와 달리 롤스로이스에 달린 장식물은 보닛 안으로 숨을 수 있는 첨단 기능이 있습니다. 백금으로 도금된 장식물의 가격만 해도 수백만원이라는데 누가 떼어갈 수도 있으니 당연히 안전장치를 마련했겠죠. 설정하기에 따라서 환희의 여신상이 항상 올라와 있거나 항상 사라져 있게 만들 수 있고, 시동을 켜면 보이다가 문이 잠기면서 들어가게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세가지 세팅 방식 외에도 보닛에 일정량 이상의 충격이 가해지거나 누군가 환희의 여신상을 가져가기 위해 힘을 주면 즉시 안쪽으로 들어간다고 하네요. 그렇기 때문에 재규어와 달리 사고가 나도 보행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만약 이렇게 인위적인 충격으로 장식물이 자취를 감추면 차량 소유주라도 다시 나타나게 할 수 없습니다. 서비스센터를 방문해야만 다시 환희의 여신상을 만날 수 있다고 하네요.

보닛에 엠블럼이 달린 브랜드의 대명사, 메르세데스-벤츠는 어떨까요? 벤츠도 아직까지 E클래스나 S클래스에 삼각별이 달려 있습니다. 재규어의 과거 장식물이나 환희의 여신상처럼 사고가 났을 때 상해를 입힐 가능성은 적어 보이지만 벤츠의 삼각별도 뒤로 젖혀지는 등 보행자에게 충격을 주지 않도록 설계됐다고 합니다. 겉에서 봤을 때는 그런 비밀이 있는지 알지 못했는데, 역시 자동차에는 숨겨진 기능들이 많군요.

국산차에도 비슷한 장식물이 달린 에쿠스가 있습니다. 에쿠스의 장식물 역시 무시무시(?)하죠. 에쿠스는 라틴어 ‘개선장군의 말’이라는 차명에서 따온 천마(天馬)를 형상화해 보닛 정면에 장착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아무렇지 않게 장착돼 나오지만 수출용은 조금 다릅니다. 북미로 수출되거나 관용차의 용도로 유럽 등으로 나가는 차량의 경우 현지 보행자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해 이 장식물을 달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위치에 국내에선 트렁크쪽에 부착되는 평면 엠블럼을 달고, 그 자리에 현대차 로고를 붙이죠. 겉만 봐서는 국내용의 위용이 사라진 듯 하지만 로마에 가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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