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데스크칼럼] 大宇來 大宇去

이 즈음에 필자는 김우중(金宇中) 대우회장이 쓴 자전적 에세이집「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를 다시 읽는다. 10년전인 89년 첫 출간돼 밀리언 셀러가 된 이 책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주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로 차 있다.67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무역회사 대우실업을 창업한뒤 20여년 사이에 대우그룹을 일으킨 과정을 그는 이 책에서 생동하는 필치로 서술했다. 어린 자녀를 둔 이 땅의 많은 어버이들이 그랬던 것 처럼 필자도 당시 서점에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집어들던 때의 감회가 새로와 졌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으며 꿈과 희망을 키웠을 젊은이들이 오늘의 대우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에 생각이 미치자 착잡한 감회를 누를 수 없었다. 착잡한 심경으로 말하자면 대우 임직원, 그 중에서도 김우중 회장에 비할바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착잡의 도를 넘어 절통의 심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 푼의 빚이라도 받아 대우회생에 써야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해외를 떠돌다 청와대의 정재계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어제 귀국했던 그는 간담회 직후 또다시 해외로 발길을 돌릴 것이라고 한다. 金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에서 자신의 꿈은 한가지라도 대우가 세계에서 으뜸가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업활동은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한 기반을 닦는 것이라면서 이 꿈은 다음세대에서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의 더 큰 꿈은 자신이 부자가 아닌 존경받는 기업인,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후세에 기억되는 것이고, 마지막 꿈은 기업인도 존경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金회장의 이 모든 꿈은 지금 좌절의 위기를 맞고 있다. 대우자동차 하나를 남기고 모든 계열사를 계열분리, 매각하거나 채권단에 넘겨줘야 할 형편이다. 자동차 역시 외국기업과 인수협상이 진행중인데 그 결과 외국기업에 경영권이 넘어가면 남는것이라곤 그야말로 「빈 손」이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도전정신을 심어주던 기업, 사회에 대한 봉사를 기업정신으로 삼은 기업, 시간은 아끼지만 땀과 노력은 아끼지 않는다는 기업, 그리고 무엇보다 족벌경영과는 거리가 멀어 전문경영인을 많이 배출한 기업. 대우의 실패는 한국적 기업풍토와 관련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대우는 가족 구성부터 여느 그룹처럼 아들이나 친인척들에게 부를 대물림 할 기업이 아니다. 다른 그룹들이 부를 대물림하기에 열중이고 그 과정에서 불법까지 저지르는 사례가 비일비재 한 것에 비해 대우는 모범적인 기업이다. 金회장은 개인적으로 일중독자(WORKAHOLIC)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일에 몰두했다. 잠 자는 시간이 아까워 비행기를 탈 때도 밤 비행기를 탔으며, 골프도 치지 않았다. 그는 남유럽이 북유럽에 비해 낙후 한 것은 남 유럽의 시에스타(낮잠)습관 때문이라고 보았을 정도였다. 교과서적으로 말할때 이런 기업은 망하지 않고, 망해서도 안된다. 그 점에서 대우의 실패는 새로운 관점에서 교훈적이다. 그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많은 사업을 벌였다거나, 무모한 차입경영을 했다거나, 그가 벌인 사업이 IMF라는 예기치않은 불시타를 맞았다거나 하는 것은 현상적인 분석이다. 유능한 경영자는 결정자(DICISION-MAKER)이기 보다 조정자(CO-ORDINATOR)여야 한다는게 현대적 경영이론 중의 하나다. 경영자 혼자 결정하고, 혼자 바빠서는 좋은 결정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대우가 유능한 전문경영인을 많이 배출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의 능력이 효과적으로 기업경영에 반영됐느냐하는 데는 대우 안에서도 자성의 소리가 있다고 들린다. 金회장이 스스로 얘기했듯이 세계에서 으뜸가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한 세대의 각고와 희생을 딛고서도 이루기가 쉽지않은 지난한 과업이다. 사람의 능력은 무한하다고 하지만 한 기업가가 그렇게 많은 영역에 역량을 분산시킨 채로 세계일류제품을 만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는 대우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에 재벌기업은 많지만 그 기업제품 가운데 내로라 할 세계일류가 없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대우그룹은 GM과의 자동차 인수협상 결과여하에 따라 주식회사 대우만 남게될지도 모른다. 그럴 경우 대우는 32년전 金회장이 대우실업을 창업했던 시절로 되돌아 가는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대우로 와서 대우로 가는(大宇來 大宇去)」 셈이다. 거친 항해 끝에 원점에 다시 선 김우중회장. 이제야 말로 그가 하나라도 세계일류를 만들겠다던 꿈을 향해 다시 항해를 시작해야 할 때가 아닐까. 金회장의 기업가정신을 살리는 것은 젊은이들의 꿈을 살리는 것이다. 林鍾乾편집국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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