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경영권 방어 수단 없는 판에 자사주 활용도 막겠다니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종걸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 10명이 법인이 합병 분할할 때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거나 주주에게 주식 수에 비례해 배분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지배주주가 자사주를 이용해 편법으로 상속하거나 경영권을 강화하는 경우가 많아 주주평등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발의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상법에 따르면 회사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될 경우 지주회사는 자사주 비율만큼 사업회사의 신주를 받는다.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바뀌는 것으로 지주회사 오너가 계열사 지배력을 확대하는 수단이 된 것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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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이번 개정안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활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막상 외국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할 때 국내 기업이 쓸 수 있는 방어수단은 마땅한 게 없다. 당장 우리에게는 없지만 미국에는 주식 1주에 10개의 의결권 등 여러 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기업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훨씬 싼 값에 신주를 매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필 제도도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마당에 경영권 방어를 위해 거의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자사주 카드마저 빼앗는다면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는 우리 기업의 손발마저 묶는 셈이 된다.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을 사들인 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반대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경영권이 위협받자 갖고 있던 자사주를 우호세력인 KCC에 넘겼다. 여러모로 미묘한 시점이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 발의는 자칫 외국 투기자본에 우리 기업의 마지막 경영권 방어 수단마저 없앤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기업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구조조정작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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