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메르스 사태 키운 '미신고 병원' 솜방망이 처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3차 유행 여부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른 가운데 병원들이 사태 초기에 메르스 환자 발생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거나 뒤늦게 보고하는 바람에 화를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행 '감염병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감염병 보고 및 신고를 게을리하거나 방해한 의사, 의료기관의 장에게 기껏해야 2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하고 있어 병원 및 의료진의 태만과 책임회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1997년 감염병예방법 제정 당시에도 벌금을 높여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았지만 의료계와 보건복지부에서 제 식구 감싸기 식으로 한사코 반대하는 바람에 20년간에 걸쳐 솜방망이 처벌기준을 그대로 고집해왔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감염병 예방은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초기의 신속하고 철저한 대응이 핵심이다. 가장 먼저 환자를 접하는 병의원들이 적극적으로 당국에 신고하고 신속한 정보 공유에 나섰다면 지금처럼 응급실이 메르스 진원지로 돌변하는 사태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감염병에 대한 병원의 안이한 대처방식은 일찍부터 수없이 제기돼온 사안이다. 지난해 경기도가 133곳의 병의원을 대상으로 불시단속을 실시했더니 전체의 84%인 112개 병원에서 감염병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을 정도다. 병원의 이미지만 따질 뿐 감염병 사실을 쉬쉬하는 게 의료계의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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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한통속이 돼 유명무실한 처벌수위를 고치지 않았다니 심각한 모럴해저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정부가 가축 질병을 신고하지 않는 축산농가에는 범칙금을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올려버렸다고 한다. 이러니 정부가 힘없는 농민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을 내리고 힘깨나 쓴다는 의사들에게는 쩔쩔맨다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도 많은 의료인이 메르스와의 전쟁 일선에서 힘겨운 싸움을 벌이며 환자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 애쓰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이런 헌신적 노력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감염병 관리를 최우선적 과제로 삼아 국내 병원의 감염관리 프로그램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의료계 종사자들이 충분한 경각심을 가질 만큼 처벌수위를 한층 높이는 방향으로 관련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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