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자연재해 물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물가가 오른다. 장마 탓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요채소 가격이 1주일새 최대 2배가량 뛰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정부가 애쓰겠지만 기대할 게 별로 없다. MB물가지수를 만들어 생필품 가격을 끌어내리겠다던 전 정권은 물가관리에 실패하자 이렇게 둘러댔다. '자연재해에 따른 불가항력.'


△자연재해와 물가상승은 언제나 재앙이고 나쁜 것일까. 페스트와 가격혁명을 겪은 14~16세기 유럽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페스트로 인구의 절반을 잃었건만 대부분 살림이 펴졌다. 지주는 죽은 사람의 땅을 차지해 농지를 넓히고 일손이 부족해 노동자들의 임금도 2.5배가량 올랐다. 페스트가 안겨준 뜻밖의 짧은 잔치의 뒤로 '혁명'시리즈가 꼬리를 물었다. 단위면적이 커진 농지에서 농업혁명이 발생해 인구증가를 낳고 북남미 식민지에서 쏟아진 금은보화로 물가가 급등하는 가격혁명과 산업혁명까지 연쇄적으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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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7년과 1873년 공황에 시달렸던 미국 농부들은 '물가상승을 위한 불태환지폐 발행 자유화'를 내걸고 정당(그린백)까지 만들었다. 드넓은 농토 덕에 인건비 외에는 생산비가 필요 없어 농산물가격을 오르게 할 인플레이션을 원했던 것이다. 중서부 농민들이 결성한 정당은 한때 하원 의석 21개를 얻는 돌풍을 일으켰다. 통화팽창이 가난을 구제할 것이라는 믿음은 19세기판 계층이기주의의 박제물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 중이다. 세계각국의 무제한적 양적 완화와 인플레이션 목표 2% 달성에 목매는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마침 국제원자재가격 장기 상승 기조가 끝났다는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중국의 수요 급감과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코스트 상승 압박이 약해지고 있다는 전망이다. 물가와 성장이 동시에 낮아지는 일본형 불황에 빠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 그렇다면 인위적 부양책을 동원한 일시적 물가상승도 정책 대안이겠지만 장마 피해와 물가상승만큼은 백해무익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서민들의 생명유지비용인 식탁물가가 위협받고 후진국형 수해를 반복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 반찬 뿐이랴.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경제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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