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녹차와 홍차의 성질과 그의 역할
다섯 갈래 운동성으로 차들을 나누어 그 정체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먼저 녹차입니다. 녹차는 기본적으로 ‘자라남’의 운동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녹차를 만드는 과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찻잎에 있는 수분과 엽록소를 빠르고 가볍게 제거하는 것입니다. 비비기 시들이기 등의 공정과 더불어 가볍지만 빠른 속도로 덖어서 엽록소에 담긴 산화효소의 기능을 빠르게 정지시켜야 녹차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녹차는 비(非)발효(산화) 혹은 약(弱)발효차라고 부릅니다.
녹차는 내부에 엽록소 등 산화효소의 성분이 정지되었을 뿐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관을 할 때에도 밀봉을 해서 낮은 온도에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현실에서 녹차는 차나무의 종류와 문화적 지역차에 따라 수많은 종류가 있고, 거기에 브랜드에 따른 특징까지 고려하면 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두 녹차가 되는 까닭은 그 외형의 빛깔이나 차탕의 빛깔이 녹색이어서가 아니라, 녹색의 나무처럼 그 성질이 ‘상하(上下)로 자라나는 운동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녹차는 우리 몸에 들어와 위(胃)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뻗어나가는 운동을 하게 됩니다. 소화를 돕고 정신을 맑게 하는 역할을 하죠. 욕심을 비우는데 효과가 있어서 참선하는 이들과도 어울렸고요. 녹차는 아무리 밀봉을 잘해도 시간이 지나면 정지시켰던 산화작용이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성질이 변해가고, 그 변해가는 성질에 따라 녹차는 다른 성질의 차로 변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 차로서의 유효기간이 종료될 수도 있습니다.
녹차의 반대편에 있는 차가 ‘홍차(紅茶)’입니다. 덖는 정도를 강하게 해서 엽록소를 완전에 가까울 정도로 제거하는 것이죠. 그래서 홍차를 ‘완전발효차’라고도 합니다. 물론 잎의 성숙 정도에 따라, 맛과 향을 강조하기 위해 불의 세기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정산소종이나 치먼(祁門)과 이싱(宜興)의 홍차는 불의 강도를 윈난과 유럽의 홍차보다는 낮게 조절합니다.
세계적으로 차 소비량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하는 차가 홍차인데요. 홍차의 고향은 중국 푸젠(福建)이었지만, 소비를 주도하는 곳은 이제 유럽입니다. 탕색은 붉은 계통인데, 유럽에선 우려내기 전의 빛깔에 주목하여 이를 ‘Black Tea’라 번역하죠. 어떤 곡절이 있었든 홍차의 성질이 기운을 올려줌에 있습니다. 몸 속의 허열을 빼주고, 열을 내게 해 몸의 활성화를 돕는 작용을 합니다. 습하고 더운 지방에서 홍차가 유행하는 까닭이기도 하죠.
# 황차와 백차의 성질과 그의 역할
녹차와 홍차를 통해 산화발효의 양 축이 잡혔는데요. 발효 정도는 10% 좌우간으로 비(非)발효 혹은 약(弱)발효라 불리는 녹차, 그 반대편에 90% 가까운 발효도로 완전 발효차라 불리는 홍차! 이제 그 중간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의 중간 발효차가 있게 됩니다. 찻잎의 산화도에 따라 빛깔이 달라지는데, 그 빛깔의 정도를 기준으로 홍삼녹칠(紅三綠七)에서 녹삼홍칠(綠三紅七)까지 다양하다는 건데요. 이것들을 통칭해서 반발효차(半醱酵茶, semifermented tea)라 부릅니다.
오행으로 분류하는 토(土) 계열의 황차는 발효 스펙트럼에서 대개 중간 발효차와 일치합니다. 물론 중국 차분류학에서 말하는 황차는 제작 방법 상의 구분입니다. 녹차와 같은 가벼운 발효도에 ‘민황(悶黃)’이라는 자동산화 과정을 거치고, 그 결과 찻잎과 탕색이 황색을 띠게 되어 황차라고 부르죠. 제작 상의 황차도 오행 흐름에서는 토(土) 계열에 속합니다.
황차의 범주 안에 있는 대표적인 차가 오룡차(烏龍茶, oolong tea)라 불리는 청차(靑茶)입니다. 청차는 중간 발효차를 대표합니다. 제차공정도 녹차나 홍차보다는 불을 주는 정도가 조금 더 복잡하죠. 황차의 작용은 소통과 조절에 있습니다. 이를 두고 인체 내 작용을 ‘풀림’이라 합니다.
황차가 하는 풀림의 작용은 소화불량이나 긴장을 해소하고, 혈액 등 체액의 순환을 도와주죠. 서양에서는 이 갈래의 차를 ‘건강 미용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인체론을 기준으로 할 때, 머리와 배를 이어주는 가슴부위를 편안하게 해줍니다.
다음은 열을 내리고 기운을 모아주는 작용을 하는 ‘백차(白茶)’입니다. 백차의 고향으로 알려진 곳은 중국 복건성의 푸띵(福鼎)입니다. 그리고 남쪽 하이난(海南) 일부에서 나오긴 하는데, 특별한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시들이기와 건조과정을 거쳐 약간의 발효만 거친 차입니다.
백차는 언뜻 보면 녹차 같고, 발효도도 녹차처럼 가볍습니다. 탕색이 희다고 모두 백차는 아닙니다. 중국 절강성의 안길백차(安吉白茶)는 탕색이 흰색이고 이름마저 백차이지만 그 성질상으로는 녹차에 속하죠. 백차는 마치 쇠와 같이 단단하게 응집시켜 더운 여름에 기운을 차리게 합니다.
# 발효가 진행되는 후발효의 성질
지금까지는 산화효소에 대한 작용, 즉 외부 열을 통해 내부의 산화 정도를 조절하는, 이른바 산화발효를 기준으로 차의 성질을 살폈습니다. 한국 사람들에게 발효라고 하면 된장과 김치 등 미생물을 이용한 발효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차 가운데 여기에 속하는 차가 후(後)발효차라 부르는 흑차(黑茶)입니다. 즉 흑차는 찻잎이 미생물에 의해 충분하게 숙성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든 차이죠. 그래서 흑차는 시간을 두고 자연적으로 숙성 발효가 진행되는 차이기도 합니다. 흑차는 중국 윈난이나 쓰촨(四川), 후난(湖南), 광시(廣西) 일대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차가 윈난의 보이차입니다.
대개 후발효차는 인체에서 ‘내림’의 작용을 했습니다. 마치 물과 같은 작용을 했는데요. 우리 몸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열기를 몸의 중심으로 내려 모아주는 작용을 했고, 그래서 이 계열의 차를 ‘흑차(黑茶)’라 불렀습니다. 찻잎의 색깔이나 탕색이 검기 때문에 흑차라고 불렀다는 해석은 아무래도 너무 단순한 풀이입니다.
# 사람들에게 희망을
찻잎이 차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시는 차는 바로, 일정한 성질로 변화된 ‘차’입니다. 내 몸도 때와 장소에 따라 상태와 흐름이 달라집니다. 변하는 내 몸에 어울리는 차가 있고, 때와 장소에 어울리는 차가 있게 됩니다. 아침 차가 있고, 오후 차가 있으며, 돌아와 쉬는 저녁 차도 있을 수 있습니다.
차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미 사람의 몸과 어울릴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생각을 집중하기 위해 내 기운을 올려주는 차가 있고, 포만 상태의 몸을 소화시키는 차도 있으며, 답답한 상태의 몸을 편안하게 풀어주는 차도 있다는 것이죠. 우리 배 속을 따뜻하게 하고, 열기를 아래로 모아 근원의 힘을 찾아주는 차도 있을 거고요.
차를 이해하고 마시는 것, ‘문화가 있는 고품격 건강’의 시작입니다. 이제 하나의 차가 어떤 색과 향과 맛으로 우리 몸과 마음에 다가오는지, 다가와서 삶의 품격을 어떻게 바꿔가는지, 차례대로 살펴볼 차례입니다. /서해진 한국차문화협동조합 본부장
(*티쿱에서는 직장인을 위한 원데이-티클래스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7시30분, 차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경험해보는 시간입니다. 문의: 02-765-5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