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피케티 논쟁이 남긴 숙제


지금 세계 지성계는 이른바 '피케티 논쟁'으로 뜨겁다. 자본주의가 진행된 지난 300년간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이 일해서 버는 근로소득을 앞질러와 불평등이 확대돼왔다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주장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최근 그의 책 '21세기 자본'의 한국어판이 나와 국내에서도 피케티 논란이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좌파 경제학자는 분배 정의의 절박성이 증명됐다며 반기고 우파 경제학자는 성장을 위해 불평등은 불가피하다고 반박한다. 자연과학과 달리 인간을 다루는 경제학은 어차피 답이 없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갖고 살아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논란의 내용이 아니라 피케티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1700년 전후로 시작된 자본주의의 궤적을 실증 자료를 통해 그리려 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인문학적·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미래 화두를 던지고 있다.


피케티는 1·2차 세계대전 직후, 그 사이의 대공황 시기를 빼놓고는 자본소득 상승률이 근로소득보다 앞서 자본주의 역사에서 줄곧 사회 양극화 현상이 진행됐다고 주장한다. 인구 증가율 감소로 세계적 저성장이 고착화하면서 부동산 등의 자본이 자본을 낳는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근로 노력에 따른 소득의 파이가 줄어들면서 세습 자본주의로 변질되고 계층 간 이동성이 약화하면서 불행한 사회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물론 자본이라고 다 나쁜 자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을 생산적으로 이용하려는 창의적 기업가 정신과 노력의 산물로서의 자본도 있다.

경제학계 좌우로 갈려 자기 주장만


하지만 세계 최저 출산율,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는데다 사회 양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한국에 피케티가 던지는 시사점은 결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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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한국에는 실제 얼마나 자산분배·소득분배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소득 크기에 따른 분위별 소득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피케티가 프랑스·미국 등 선진국에다 중국 같은 신흥국 등 28개 국가의 소득분배 흐름을 추적했지만 한국은 빠져 있는 이유다.

한국 경제학계도 좌파· 우파로 갈려 포퓰리즘적 분배 요구나 시장경제의 찬양을 외칠 것이 아니라 저성장기에 접어든 한국 자본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적 연구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거장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은 경제학을 '찌질한 과학(dismal science)'이라고 표현했다. 특정 조건에 따른 이론 모델을 내세우며 과학인 체하지만 실제 인간행위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경제학의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현대 경제학 교과서의 대표 주자인 그레고리 맨큐 박사는 "경제학자는 과학자인 척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도 종종 그러기 때문에 잘 안다"라고 말했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18세기 자본주의 태동기만 해도 자본주의 인류의 미래를 고민한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경우가 보편적이었다. 시장경제이론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철학적 저서를 통해 자본주의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지도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청렴, 도덕성이 존재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인구 급증에 따른 대재앙을 우려했던 토머스 맬서스는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였다.

한국 경제학계도 이제 고답적 이론모형을 근거로 자신의 주장만 펼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갖고 인문학·역사학·사회학자의 관점에서 장원한 시각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천착해야 할 때다. 한국은 저성장, 사회 양극화로 계층 간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자신을 위한 논문이 아니라 피케티처럼 실증적 자세로 진지하게 연구하고 이들 연구물을 토대로 정부가 경제 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문·사회 통섭 실증적 연구 필요

진영논리에 매몰돼 갈등하는 한국 사회 비용이 무려 160조원이라는 얘기가 있다. 갈등을 줄이려면 우리 사회가 현재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공감대가 선행돼야 한다. 지성인들은 관변 단체나 기업 이익단체의 논리에 동원되는 나팔수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자들, 정말 진지해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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