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26일 평상시처럼 오전7시30분쯤 광화문 본사 사옥에 출근해 곧장 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준비를 잘해온 만큼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금호산업 인수전에 참여한 신세계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어 이날로 예정됐던 2015년 정기 임원인사까지 연이어 단행했다. 동요하는 모습은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는 게 회의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계의 의리를 생각해 대기업이 참여하지 않기를 내심 바랐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며 "4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까지 아직 시간이 있는 만큼 묵묵히 준비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근간이 되는 금호산업 인수전에 신세계·호반건설 등 기업과 MBK 등 사모펀드들이 출사표를 던지면서 박 회장의 위기감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합종연횡과 우선매수청구권을 쥔 박 회장이 내놓을 히든카드에 관심이 모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현재로서는 정용진 부회장이 인수전의 키를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가 어떤 의중을 가지고 인수전에 뛰어들었는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신세계가 롯데를 견제하기 위해 인수의향서(LOI)를 냈다는 설과 결국 백기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 등이 다양하게 엇갈리고 있다.
다만 채권단 내부에서는 신세계의 백기사 설에 대해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링 위에 오른 선수가 어떻게 상대편을 도와 코치 역할까지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LOI를 낸 6곳의 기업이나 사모펀드는 박 회장에 대해 자금지원 등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확약서를 제출하게 할 가능성도 있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후보군의 백기사 금지 조항에 대해서는 채권단 내부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며 "다만 굳이 강제 조항이 없어도 신세계나 호반건설이 박 회장의 백기사로 나설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금호산업 인수전이 신세계와 롯데의 유통그룹 대전으로 확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부 사모펀드는 사실상 롯데를 대리해 인수전에 발을 담갔다는 설도 유력하게 떠도는 상황이다. 특히 사모펀드들은 매입가를 높게 불러도 독자 인수가 어렵기 때문에 롯데나 CJ 같은 대기업 전략적투자자(SI)를 끌어와 합종연횡을 맺어야 하는 상황이다. 채권단을 이끄는 산은이 실제 경영 의지를 평가 항목에 넣어둔 탓이다.
박 회장 역시 재무적 투자 파트너가 절실한 상황이다. 금호산업 매각가는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반면 보유 현금은 이에 턱없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동안에는 박 회장이 신세계나 롯데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으나 이들 기업이 경쟁자로 나서 당장은 군인공제회 등 우호 세력으로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금호그룹의 한 관계자는 "채권단의 적격성 심사에서 자연히 후보군이 추려질 것이기 때문에 과열 경쟁은 없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