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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3차 양적완화(QE3) 조치로 국제 금융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면서 국내 금융시장으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몰려올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금리가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데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도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등 캐리 트레이드가 발생하기 위한 여건이 속속 조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QE3 이후 미국계 자금만 최소 12조원이 국내 증시로 몰려올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투자가들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031억원치를 순매수했다. FRB의 QE3 조치가 발표된 지난 14일 1조2,830억원치를 순매수한 것을 포함하면 외국인투자가들이 이틀 동안 사들인 금액만 1조7,861억원에 달한다.
국내 채권시장으로도 외국인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4일 이후 외국인투자가들은 국고채 903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QE3 발표 이후 위험자산 선호도 증가로 매수세가 약간 주춤해지기는 했지만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한국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면서 국내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외국인 자금이 국내 금융시장으로 몰려드는 것은 FRB의 QE3 조치로 풀린 유동성 실탄이 선진국에 비해 경제여건이 양호하고 금리도 높은 한국 시장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저금리를 통해 조달한 자금이 투자여건이 좋은 나라로 유입되는 이른바 캐리 트레이드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경제의 펀더멘털이 탄탄한데다 금리도 선진국에 비해 높은 상황이어서 제로 수준의 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0~0.25%)이나 유럽(0.75%)의 캐리 트레이드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여건이 형성돼 있다.
김용구 삼성증권 연구원은 "FRB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으로 달러화와 유로화 투자매력이 반감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유지하면서 캐리 트레이드 초기의 성격을 띤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화가치가 연일 강세를 띠고 있는 점도 캐리 트레이드를 부추기고 있다. 이날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원20전 내린 달러당 1,116원에 마감됐다. 장중 1,113원30전까지 떨어져 연중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원화가치는 연일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정경팔 외환선물 시장분석팀장은 "FRB의 대량 유동성 공급으로 달러화가 약세를 띠면서 원화 등 이머징 통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원ㆍ달러 환율의 경우 조만간 1,110원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국내 금융시장이 외국인들로부터 매력적인 투자처로 부각되면서 앞으로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대거 유입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특히 자금 유입규모는 과거 1차 양적완화(QE1)와 2차 양적완화(QE2)를 능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성준 NH농협증권 연구원은 "지난 QE1과 QE2 때 유가증권시장으로 미국계 자금이 각각 12조원, 9조7,000억원 유입됐는데 QE3가 QE1과 QE2 규모보다 확대됐음을 감안할 경우 최소 12조원의 순유입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옥희 IBK투자증권 연구원도 "7월 영란은행(BoE)이 추가 양적완화를 시행할 당시 영국계 자금이 국내 증시로 8월 한달 동안 3조원이나 유입됐다"며 "9월에는 ECB가 무기한 국채매입 프로그램(OMT) 조치를 발표했기 때문에 범유럽계 자금도 한국 증시로 추가 유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외여건이다. 김 연구원은 "미국의 고용지표가 급속히 나빠지거나 유로존 위기가 다시 부각될 경우 달러 등 안전자산 회귀심리가 강화돼 캐리 트레이드 청산 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며 "이들 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증시는 물론 외환시장도 요동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