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너무 당황했던 그때 그 시절-이종덕 충무아트홀 사장


1966년 10월31일, 미국의 린든 B.존슨 대통령이 동남아시아 6개국 순방을 마치고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내한했다. 필자는 당시 문공부에 재직하며 공연예술을 담당했는데 전력을 기울여 행사를 준비했다. 워커힐 호텔에서 축하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중 전기가 꺼지는 아찔한 사고가 발생했다. 한미 대통령을 겨냥한 테러는 아닐까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실내는 깜깜했고 장내는 혼란스러웠다. 이윽고 실내에 불이 들어왔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검은 양복의 경호원 무리 속에 둘러싸인 채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옆에 존슨 대통령과 비슷한 거인이 앉아 있었는데 기둥 뒤편에서 미국 경호 부대가 진짜 존슨 대통령을 호위하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짧은 순간에 '작전'이 펼쳐진 것이다. 저편에서 걸어 나오는 존슨 대통령과 의자에 앉아 있는 닮은꼴을 번갈아 보고 있자니 박 대통령을 비롯해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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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호 시스템은 우리보다 한참 앞서 있었고 한국의 대통령 신변 보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엉성하기 이를 데 없는 경호 시스템을 바로 잡으려 했고 경호 관계자들을 직접 미국에 보내 그들의 조직적이고 전문화된 기술을 배워 나가며 체계를 바로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4년에 육영수 여사가 총격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1979년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궁정동에서 김재규의 저격으로 서거했다. 경호의 빈틈을 파고든 테러와 측근의 총격으로 인해 우리는 5년 사이에 국가원수와 퍼스트레이디를 처참히 잃고 말았다. 참으로 비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반복되는 비극에 국민 모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8월20일, 경기도 연천군 지역에서 있었던 북한군의 도발로 인해 남북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국지적 위협 상황에 발령되는 가장 높은 단계의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고 합동참모본부는 한미연합사령부와 협의를 거쳐 대북정보 감시태세인 '워치콘'을 2단계로 격상했다.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남북은 판문점에서 최고위급 회담을 2차에 걸쳐 재개해 주말 내내 장시간 회담을 지속했으나 입장이 쉽게 좁혀지지 않을 듯하다. 옛말에 천장지제 궤자의혈(千丈之堤 潰自蟻穴), 즉 '천장(千丈) 높이의 둑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여도 안보가 무너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필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 돼야 할 것은 '대통령의 신변'을 돌보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VIP 경호마저 무너져 너무나 당황했던 그때 그 시절을 본보기 삼아 이제는 어떠한 위기 상황에도 의연히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경호 시나리오를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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