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십자각] 그래도 판을 깰 수는 없지 않은가

-李宗奐(산업부 차장)사람사는 일이라는게 자연과학의 세계처럼 명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처한 입장에 따라 시각이 다르고, 접근법의 차이만큼 해석도 양면적, 또는 다면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언론이 『무책임하다』는 비난에도 불구, 종종 양비론이나 양시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까닭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아무튼 이 글 역시 그같은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먼저 고백한다. 지금 대부분의 국민은 노사정위 좌초위기를 조마조마하게 바라보고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심정」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노동계는 경제난 극복을 위해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면서도 노동자들에게만 희생과 고통이 강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얘기다. 기본적으로 3자 가운데 노측이 가장 약자이기 때문이다. 설사 같은 강도의 고통이 가해진다 해도 그것이 곧바로 피부에 와닿는 체감지수는 노측이 다른 양쪽보다 크게 마련이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만 해도 그렇다. 피섞인 눈물속의 그 분노를 누가 헤아릴 것인가. 핏발이 선 그들의 절규는 듣는 이의 가슴을 도려낸다. 하지만 기업의 고충도 만만찮다. 그것이 실제이상 부풀려진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또는 잘나가던 시절 분수몰랐던 허장성세(虛張盛勢)의 대가를 치루는 것일지언정 역시 손발을 잘라내는 아픔이 작지않기 때문이다. 그간의 경위야 어찌됐건 노사정위는 지난해초 끝간데 없이 추락하던 이 나라경제를 굳건히 받쳐준 버팀목이었다. 더욱이 이익이 상충되는 집단끼리의 합의체를 이끌어냈던 것은 우리사회로서는 귀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이제 겨우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는 하지만 정작 그 끄트머리까지 얼마나 더 어둠속을 헤매야 할 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지금 노사정위라는 완충지대를 걷어버린다면, 그리고 다시 대결구도로 뒤집어 진다면…. 국가신뢰도의 재추락은 물론 경기회복세의 반전과 실업증가라는 최악의 악순환이 다시 머리를 치켜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성적인 사유(思惟)니 객관성의 획득이니 하는 말들은 「먹고 사는」절박함앞에서는 죄다 사치스럽기만 한 것 들이다. 그렇더라도 마지막 남은 한 올의 이성에 화두(話頭) 하나를 매달아보자. 「지금 우리사회가 과연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없이 이 난관을 뚫고 나갈 비책이 있는가」 해답은 이미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노동계는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라도 대화와 타협의 틀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 또 정부는 구조조정 과정의 극심한 고통을 덜어주는 다양한 정책노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노동현장의 정서」를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노력이 절실하다. 기업들도 노동자들의 부담과 아픔을 과감히 나누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한걸음씩 몸을 옮겨 시각을 달리해 보자. 어차피 우리 모두는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신음하면서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 운명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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