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00세 시대의 그늘 노인자살] <4·끝> '침묵의 선택' 막으려면

철저한 원인 분석이 첫 걸음… 웰 다잉 교육도 서둘러야<br>국가 차원서 심리적 부검… 원인에 맞는 대책 만들고<br>의료·복지 수준 높여 황혼 삶의 질 향상<br>정신보건전문 요원 육성·관리 노력 필요

충남의 한 농촌에서 노인들이 마을을 방문한 충남광역정신보건센터 생명사랑지킴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제공=충남광역정신보건센터

5년마다 중앙행정기관과 각 시도별 지방자치단체가 범정부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한 자살예방법이 지난 4월부터 시행됐다.

자살예방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아직 법 시행 초반이니만큼 대부분의 지자체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중구난방식 대책 마련에만 매진하고 있는 듯하다. 국내외 자살예방 전문가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예방대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해 모색해봤다.


◇철저한 실태 파악이 자살예방의 첫걸음=노인 자살은 일반적으로 빈곤 등의 경제적 어려움, 가족 해체 등에 따른 소외감, 질환에 따른 고통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여러 정황들을 고려해 추측한 단순한 가설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전문 검시관이 자살자의 주변인물, 고인의 일기, 경찰 수사기록 및 병원 의무기록 등을 종합해 자살자가 어떤 문제 때문에 자살을 택했는지를 규명하는 작업인 '심리적 부검'을 제대로 진행해본 경험이 없다. 전문가들은 각종 대책을 발표하기 앞서 철저한 원인분석부터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최명민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때 자살률이 세계 1위였던 핀란드의 경우 5년여에 걸쳐 자살의 원인과 실태 파악에만 매진했다. 문제점을 명확하게 파악한 후 거기에 맞는 대책을 세웠고 지금처럼 자살률을 낮출 수 있었다. 명확한 원인 파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심리적 부검의 경우 자살을 금기시하는 국내 정서상 민간이나 개인이 하기 힘든 작업이며 반드시 국가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료ㆍ복지 질적 수준 높여야=세계 수준이라는 국내 의료진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상당수는 치매ㆍ당뇨 등 만성적인 신체적 질환을 비관해 자살을 택하고는 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나라의 의료 형태가 질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방안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규섭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한국자살예방협회장)는 단적인 예로 짧은 진료시간을 들어 설명했다.


"고혈압이나 당뇨 등의 만성질환은 병의 완치가 아닌 병을 얼마나 잘 다스려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해주고 함께 이겨나자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환자당 길어야 5분 안팎의 진료시간만을 할애 받죠. 상담에는 비용을 받을 수 없으니 의사들이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환자 역시 병원을 가도 약만 주더라는 무기력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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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빈곤노인ㆍ독거노인이 넘쳐나는 상황에 복지 역시 중요하다.

또 자살을 마음먹은 사람들의 경우 어떤 신호든 간에 주위에 알린다는 것이 전문가들 사이의 정설로 통하지만 노인의 경우 오히려 침묵 끝에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의 삶에 근접하게 다가간 복지 종사자들이나 만성질환으로 방문한 1차 의료기관 종사자들 정도만이 위험을 알아채고는 하기에 이들을 노인 자살예방 전문가로 육성하는 방안도 전략적으로 고려해볼 만하다.

◇전문가들 심리적 소진에도 신경 써야=자살예방을 위한 전문가 육성의 중요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키워낸 전문가들이 업무를 유지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살 시도자 및 자살 고위험자를 상대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들의 업무는 한마디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롭다. 최선을 다했지만 클라이언트가 결국 자살을 택했을 경우의 충격은 물론 순간의 말실수 등으로 자살방조죄 등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다. 심리적 소진이 큰 직업이지만 급여 수준이나 대우는 좋지 않다. 많은 종사자들이 사명감이 아니면 버틸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중앙자살예방협회 한 관계자는 "매년 간호사ㆍ임상심리사 등 정신보건전문요원이 배출되고 있기는 하지만 자살예방사업의 부족한 예산과 격무로 오래 못 버티는 경우가 많다"며 "지방의 경우 정신보건전문요원이 특히 부족해 자살예방센터 등에서 클라이언트와 상담을 하는 전문인력까지도 일반 사회복지사 등 비전문가로 꾸려지고는 한다"고 설명했다.

◇노인들도 자살에 대한 인식 바꿔야="한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의 문제는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입니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노인들 스스로도 삶이 다소 어려워도 자살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살아나가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존엄한 죽음은 남은 사람들에게 감사ㆍ용서ㆍ화해ㆍ위안의 메시지를 보내지만 자살은 남은 자들에게 수치심ㆍ무력감과 극도의 슬픔을 안겨준다"며 "자살은 개인의 권리가 아니며 자살에 관대한 태도는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식의 확산을 위해서는 '웰다잉(Well-dying)'을 위한 죽음교육도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하 원장은 "웰다잉은 죽는 그 순간까지도 존엄한 모습을 간직하자는 운동"이라며 "제한되고 유한한 삶의 속성을 잘 알아야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아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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