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검찰이 정신줄 놓았나.'
차분한 머리와 서늘한 시선으로 금융시장을 감시ㆍ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이 직원들의 잇단 비리와 부적절한 처신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벌어졌던 당시 금감원 파견단은 상황파악능력 부족과 현장 장악력 결핍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수시로 터지는 금감원의 전ㆍ현직 임직원들 비리와 독직사건은 시장 관리자로서 금감원에게 요구되는 최우선 덕목인 '깨끗한 심장'이 더럽혀졌다는 사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8일이면 취임 한 달을 맞는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의 어깨 위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차단, 가계대출 부실 위기 진화 등등 각종 금융시장 현안들에 덧붙여 안팎의 사고와 비리로 땅에 떨어진 금감원의 위신과 명예ㆍ양심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커다란 숙제가 얹어졌다.
◇고양이에 생선 맡긴 격=지난 25일 금감원 전ㆍ현직 직원 4명이 금품비리와 연루돼 형사처벌을 받았다. 부산지원 수석조사역(3급) 최모씨가 부산저축은행그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구속됐고 금감원 4급 선임조사역 황모씨와 전 금감원 직원 조모씨는 서울남부지검에서 구속기소됐다.
최씨는 대출 청탁과 관련한 개인 비리 혐의로, 황씨와 조씨는 수천만원을 받고 부실기업의 유상증자를 허가해주도록 부탁한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이들에게 돈을 건넨 전 금감원 직원 김모씨도 함께 구속됐다.
또 광주지검은 이날 금감원 저축은행서비스국 부국장 정모씨를 체포했다. 정씨는 보해저축은행 대표로부터 '검사에서 선처해달라'는 명목으로 4,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은 이들 직원의 혐의가 퇴직 이후 전 직장을 상대로 한 로비이거나 업무와 무관하다며 쉬쉬하는 분위기다.
◇도덕적 해이 극에 달해=이달 들어 연이어 터진 현대캐피탈 해킹사건과 농협의 전산사고도 금감원과 무관하지 않다. 정보기술(IT) 보안 분야에 대한 관리 소홀이 대형 사고를 불러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여기에다 부산저축은행 임직원이 영업정지 전날 밤 친인척 등의 예금을 빼갔지만 현장에 있었던 금감원 직원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도덕적 해이가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다.
앞서 금감원의 한 국장은 자신이 조사하던 기업을 변호하는 법무법인으로 이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른바 '11ㆍ11 옵션쇼크' 사건을 담당했던 국장이 사건을 일으킨 도이치증권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앤장으로 자리를 옮길 계획으로 전해졌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업무의 특성상 높은 청렴도를 갖춰야 할 금감원 직원들이 요즘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는 형국"이라며 "각종 비리와 도덕적 해이로 얼룩진 감독당국을 어찌 신뢰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강력한 대책 마련할 것"=안팎의 눈총에 시달리고 있는 금감원도 내부직원들의 비리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대책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최근 최수현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금감원이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 심각한 일"이라며 "직원 비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비리가 발생할 소지가 있는 구조를 바꾸는 등 매우 강도 높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조만간 내부 감찰 조직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현재 7명에 불과한 감찰팀을 2개로 늘리고 인원도 2배 이상 보강하기로 했다. 또 금융회사로 자리를 옮긴 퇴직 직원과 현직 직원의 접촉을 제한하는 조치도 마련할 예정이다. 아울러 도덕적 해이와 관련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직무와 관련한 윤리교육도 강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금감원이 지금의 위기를 일시적으로 모면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노력을 인정받으려면 진정성에 바탕을 둔 처절한 자기반성과 증거가 필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