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一日一識] <22> 지방자치제 이대로 좋은가

서울 국회의사당.

6.4 지방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곳곳에서 기초 자치단체의 선거부정과 관련된 소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선거 결과에 불응하는 차원에서 후보 본인을 고발하는 경우 외에도 다양한 논란이 있습니다. 선거비용을 초과해서 지출한 혐의로 캠프 책임자가 기소된 경우, 불법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된 시장 측근이나 아들, 선거 전에 시장의 치적을 홍보한 이유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그것입니다. 이쯤 되면 제3자 입장에서는 당선인 본인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네트워크가 구조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나 않았는지 의심할 법 합니다. 문제는 선거라는 특정 시점에 벌어진 사건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어기고 집권한 지방 권력이 과연 얼마나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지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중앙 정부와 달리 뚜렷한 전문성이나 업력도 입증되지 않은 ‘신생 권력’은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문제는 기초자치단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광역단체도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광역 시장, 도지사에 차기 대권 주자들이 포지셔닝(positioning)하는 관례가 생기면서 정치인들이 지방을 전문적인 행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포석으로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물론 중량급 정치인이 ‘도백(道伯)’으로 부임하게 되는 것은 장점이 많습니다. 국가 차원에서 해당 지역이 많은 예산을 배정받을 수 있도록 지역 국회의원들과 공공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만 잔뼈가 굵은 공무원들보다 훨씬 거시적인 시각으로 지방 행정의 구조 개혁과 성장을 주도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경제학의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 관점에서 보면 거물 정치인 출신 광역단체장들은 다분히 인상 관리(Impression management)의 일환으로 지방 정책을 주도할 위험도 있습니다. 지역의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국 적자를 떠넘겼다고 비판받는 글로벌 행사들, 국가 단위의 공간 유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큰 행사, 큰 공간 하나를 잡으면 그 지역 단체장의 품격은 올라가겠지만 정작 공무원은 책임으로, 주민은 세금으로 그 뒷일을 떠안아야 합니다. 게다가 논공행상 식으로 지역 전문가가 아닌 자기 사람들을 지역 공공기관의 요직에 배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뜻을 같이 한, 일 잘하는 동지들을 쓰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해당 영역에서 열심히 해 온 공무원이 경력이 적은 정계 출신 영입 인사에게 밀려나 신세를 한탄하는 모습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조직 내에서 정당성을 잃어버린 광역단체장이 변화와 혁신을 위해서 공직자들을 다독이고 이끌고 나갈 수 있는 여력은 많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일련의 상황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는 ‘과도한 민주주의’라는 이야기가 종종 제기되고 있습니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역사 속에서 이미 고도의 지방 분권 체제가 확립된 경우가 많습니다. 도도부현 체제로 지방자치제가 정착된 일본의 경우에는 거의 500년의 세월 동안 각 지역들이 ‘한 나라’라고 할 정도로 분권화된 봉건 국가였습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식민지 13개 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위해 동맹을 이루었던 것이 시초였죠. 이탈리아나 독일, 영국 모두 한 나라였던 세월보다 각각 정치적으로 분리되었던 시기가 더 오래됐습니다. 그만큼 지역 문화의 자족성도 발달했고, 경제 시스템이 자생적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들 나라보다는 오히려 프랑스 식 중앙 집권 체제에 가까울 만큼 1000여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고려, 조선 모두 서로 이질적인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지역들을 하나의 법령과 체제로 지배한 국가였습니다. 왕 중심의 관료 문화가 집단기억 속에 깊게 뿌리 내린 상황에서 어쩌면 지방자치제가 알아서 잘 돌아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일 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개헌 논의로 한참 이슈가 됐던 내각제도 실은 지역별로 자치제도와 헌법 기관이자 대표로서의 의원이 존립 이유를 가져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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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문화나 역사 속에서는 좀처럼 부자연스러운 지방 자치제, 이대로 두는 것이 옳을까요? 그렇다고 지자제를 완전히 폐지해버리고 갓 행정고시에 합격한 20~30대 시장과 군수가 부임하는 옛날식 접근법도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 정계에도 20대 시절 기초자치단체장 경험을 지닌 정치인들이 종종 있죠. 그렇다고 해당 지역 행정이 그 사람이 재직했을 당시 효율적이고 탄탄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대안적인 모델을 고민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프랑스의 ‘경기도’에 해당하는 일 드 프랑스 주의 모(Meaux) 시 시장은 대중운동연합의 대표이자 전직 예산부 장관이었던 장 프랑수아 코페(Jean Freancoix Cope) 의원입니다. 그는 금융사 덱시아(Dexia)의 CEO를 지냈고 파리 8대에서 재무관리를 강의한 적도 있는 공공재정 전문가입니다. 코페 시장 이외에도 지자체와 중앙 정계의 자리를 효과적으로 겸임했던 사례는 많습니다. 에두아르 발라뒤르(Edouard Balladur) 전 총리는 재무장관과 내무장관, 파리 시 의원과 일 드 프랑스 주 의원을 겸직했습니다. 알랭 쥐페(Alain Juppe) 전 총리도 지자체장인 보르도 시장과 중앙의 외무장관, 국방장관, 환경부 장관 등을 겸임했습니다. 사실상 프랑스에서는 전문성 있는 리더가 중앙과 지방을 오가며 열심히 일하는 게 일종의 통례처럼 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중앙집권 전통을 지녔으면서도 전문성과 단체장의 영향력, 그리고 대중에의 설득력을 함께 고려할 수 있는 모델을 충분히 고민한 셈입니다. 우리도 한 번 쯤 생각해 봐야 하는 포인트입니다.

사회학자들은 신뢰는 전문성과 정당성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의 지자체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더이상 ‘완전히 없애버리자’는 논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 인적 구성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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