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객선 중에서 가장 크다는 카페리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돼 침몰했다. 처음 뉴스를 접할 때만 해도 그리 심각하게 보도되지 않아 일반적인 좌초사고라 여기고 육지에서 가까운 해역이니 모두 구조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런 참담한 결과로 이어지다니 말이 안 나온다.
선진국 진입을 자랑하고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앞두고 있다고 큰소리치며 세계 5위의 해운국가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이번 사고와 그 처리 과정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자괴감을 감출 수 없다. 필자도 전직 항해사로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세월호'의 기적을 간절히 기원한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사람이 선박을 운항하면서 지금까지 발생한 해양사고와 그 후속조치를 대표하는 격언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대형여객선 사고와 국제사회의 대응책을 살펴봄으로써 교훈을 되새겨보자.
대표적인 여객선 참사 가운데 대서양에서 빙산과의 충돌로 1,517명의 인명을 앗아간 '타이타닉호(1912. 4)'를 가장 먼저 들지 않을 수 없다. 사고의 원인과 결과는 영화 등을 통해 이미 많이 알려졌다. 1914년, 그 결과물로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비록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발효도 못하고 폐기됐지만 선박의 구조와 설비 및 항해안전에 관한 각종 기준을 담고 있는 SOLAS협약은 이후 1929·1948·1960·1974년에 개정을 거듭하면서 대표적인 해상안전에 관한 국제협약으로 자리 잡았다.
1977년 3월에는 벨기에의 지브르그 항에서 로로여객선인 '헤럴드 프리 엔터프라이즈호'가 출항 25분 만에 전복됐다. 193명의 희생자 대부분이 3℃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사고원인은 선수 도어(Door)가 열린 채로 출항해 다량의 바닷물이 차량갑판으로 유입돼 90초 만에 전복된 것인데 승무원들 중 아무도 이 사실을 몰랐고 확인조차 하지 않아 빚어진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후 국제사회는 이러한 인적과실로 인한 유사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국제안전관리규약(ISM Code)'을 SOLAS 제9장으로 제정해 시행했다.
'에스토니아호' 침몰사고는 1994년 10월28일, 총 989명의 승선자 중 852명의 인명을 앗아간 현대사 최악의 해상 재난사고다. 발트해의 겨울폭풍이라 부르는 거친 바다에서 선수문의 잠금장치가 부서지며 떨어져 나가 다량의 해수가 차량갑판으로 유입됐다. 이에 배가 오른쪽으로 3~40℃ 기울어지면서 선내 이동이 불가능해졌고 당시 갑판 위 승객들만 생존할 수 있었다. 이 사고로 국제사회는 RO/RO여객선의 안전 증진을 위해 복원성 규정을 개정하고 공공방송시스템을 설치하는 등 국제협약 내용을 대폭 강화했다.
한편 우리나라 연안 수역에서는 공교롭게도 약 20년 주기로 대형 여객선 참사가 발생하고 있는데 부산 다대포 앞의 '창경호' 사고(1953년 1월, 332명 사망), 여수 소리도의 '남영호' 사고(1970년 12월, 323명 사망), 부안군 위도면의 '서해 페리호' 사고(1993년 10월, 296명 사망) 등이다.
이러한 국내외 여객선 참사의 결과 국내 여객선 안전관리제도에도 당연히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를 반추하여 미비한 부분이 없는지 반드시 재고해 봐야만 한다.
이번 '세월호'의 경우 출항시간 지연으로 항해거리 단축을 위해 항로를 변경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장은 출항은 늦었지만 다음 항구의 입항시간에 맞춰야 한다는, 상업적 압력(commercial pressure)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무언의) 압력이 사고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따라서 이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장치를 해두는 것과 동시에 이번 사고와 같은 재난급 대형사고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재난대응 매뉴얼과 절차를 수립해둬야 한다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