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민중미술가로 유명한 신학철(68)과 다양한 매체로 풍자적 작품을 선보이는 김기라(38). 둘의 나이 차이는 딱 서른 살, 한 세대를 뛰어넘고 있다.
두 사람을 나란히 내 건 2인전 '두 개의 문(門)'이 4일 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연구소(소장 정정화)의 갤러리175에서 개막됐다. 왜 이 두 작가일까?
겉으로 확인되는 둘의 공통점은 사진을 덧붙이는 콜라주 기법이다. 가로 8m가 넘는 신학철의 대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는 작가가 보도사진에서 포착한 현실 그 자체를 여러 겹 촘촘히 붙인 것. 한국 전쟁 직후의 피폐함부터 군사독재에 대한 저항, 문화 개방과 산업화 과정 등이 익숙한 정치인ㆍ영화 주인공의 모습, 민중의 파란만장한 삶과 함께 노골적으로 펼쳐진다. 신작 '한국근대사-관동대지진'은 한국인 학살의 충격적 사진에서, '한국현대사-망령'은 다시 등장한 극우보수 세력에 대한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 196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이끌었던 아방가르드협회(AG)의 한 축이었던 신학철은 1970년대 이후 동시대 현실을 비판하는 민중미술가로 활동해 왔다.
맞은 편 김기라의 작품 '스펙터-몬스터(망령-괴물)'는 역사서적에서 찢어낸 신상(神像)과 우상(偶像)를 손으로 붙인 것. 온갖 성스러운 형상의 조합이 역설적이게도 괴물을 낳았다는 사실은 우상 속에 내제된 인간들의 욕망을 비꼬고 있다. 작가의 손길을 확인할 수 있는 콜라주 원작이 처음으로 전시됐다. 히틀러의 얼굴을 한 성모마리아가 아기 오바마를 안고 있는 '히틀마리아(Hitl-Maria as a continent of history)'나 마르크스에게 만화 속 영웅이 사용할 법한 녹색 가면을 씌운 '맑스의 초상' 등은 정치와 종교가 행한 폭력성, 신격화 된 지성 등을 블랙코미디의 풍자적 기법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두 작가 모두 역사적 사건과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다루지만 표현에서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역사성의 거대담론 속에서 비극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가들이지만 세대와 감수성의 차이로 인해 신학철은 한국적 역사현실을 무겁게 조망하고, 김기라는 좀 더 국제적인 시각으로 진지한 주제지만 유머를 곁들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같은 맥락의 진지한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괴기스러우면서도 강렬하게 '불편함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으로 귀결된다"고 덧붙였다. 전시제목인 '두 개의 문'은 이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작가들을 통해 '현대미술이란 이런 것'이라고 안내하는 문을 의미한다. 20일까지. (02)720-9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