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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보금자리 닮아가는 행복주택] 주민 반발·비싼 사업비에 한걸음도 못떼… 원점서 재검토해야

목동·송파 등 지자체 반대… 건축비도 민간의 4배 육박<br>정부 공약관철 부담서 탈피… 공급과잉 도시형주택 매입해<br>임대주택으로 활용해 볼만

지난 5월 국토교통부가 행복주택 시범지구를 발표한 후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주민들이 행복주택 건립 반대서명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서민주거 공약인 행복주택 사업이 주민 반대, 비싼 사업비 등으로 난항에 빠지면서 5년짜리'시한부 정책'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경제DB


"행복주택이 처음 공약으로 나왔을 때 이상론에 치우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철도 위 유휴부지나 유수지를 활용하는 것은 주변 진동과 소음ㆍ악취 등으로 주거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시각이 많았던 게 사실이죠."(민간 경제연구소의 한 연구원)

"5년간 20만가구 공급도 현실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7개 시범 지구사업마저 후퇴하게 되면 정부는 정말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국토교통부 고위관계자)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서민주거 공약인 행복주택의 현주소다.

지난 5월 시범지구와 청사진을 발표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여러 주거복지 공약 가운데 가장 실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던 행복주택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수도권 총 7곳에서 선정된 시범지구 가운데 상대적으로 주민반발이 적은 서울 오류와 가좌지구 단 2곳만 지구지정이 완료됐고 이들 지구마저도 민간 아파트 건축비의 4배에 달하는 3.3㎡당 1,700만원의 건축비가 소요되는 것으로 설계 결과가 나오자 최근 국토부가 부랴부랴 견적 재산출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시공사들의 입찰 참여가 무기한 연기돼 올해 안에 착공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인허가 등 통상적인 절차를 고려했을 때 설계와 견적서를 다시 내려면 최소 6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공급 기일을 맞추기 위해 2개월 내 견적을 내면 졸속 추진과 부실시공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행복주택=행복주택의 표류는 사실 예견된 결과다.

시범지구 발표 직후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혔고 이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목동ㆍ송파 등 각 지구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궐기대회를 열고 있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해당 지역 지자체장과 의원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토부 공공주택건설추진단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행복주택처에서 소통대응팀을 꾸려 반대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한 작업을 지속하고 있지만 '건설 전면반대'를 외치고 있는 주민들을 몇 가지 인센티브 제공으로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목동 지구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이미 행복주택 반대 서명에 서명한 양천구민이 10만명에 달한다"며 "반대가 극렬한 상황에서 행복주택을 추진하겠다고 사업계획만 일방적으로 설명하고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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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와도 안 맞는 비싼 건설비=더 큰 문제는 비싼 건설비다.

철도 유휴부지나 국공유지를 활용하는 행복주택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주민보상 등의 절차가 필요 없어 택지조성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오류와 가좌 등 시범지구 두 곳의 건축비가 민간 아파트 건설비의 4배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신혼부부 등 젊은층들이 저렴한 임대료에 거주할 수 있는 행복주택의 당초 취지와는 달리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편의시설과 인센티브 등을 집어넣어야 하는데 인센티브가 커질수록 전체 사업비용은 더욱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보금자리주택은 그나마 분양주택 매각을 통해 일부 수익이라도 거둬들일 수 있었지만 행복주택은 유수지나 철도 위에 지을 경우 모든 부담을 사업시행자인 LH가 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얘기다.

사업 타당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민간 업계만 쥐어짜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이달 초 LH에서 행복주택 입찰에 참여의사가 있는 시공사들에 사전예고 행사를 실시했지만 제시한 자료가 형편 없었다"며 "전기와 설비ㆍ토목 등의 도면이 전혀 없고 건축도면만 있는 상태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점에서 검토 후 기존 주택 활용해야=전문가들은 행복주택이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공약 관철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셉트의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원점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약 이행에 매몰되지 말고 도심 내 거주를 원하는 저소득 세입자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를 높고 과감한 궤도수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도심 곳곳에 들어서고 있지만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도시형생활주택이나 다가구 주택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정부가 '기존주택 매입임대사업'을 위해 매입한 주택은 전국적으로 5만3,237가구에 달한다. 하지만 서울ㆍ경기(2만5,052가구) 지역의 15%가 넘는 3,771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해 빈집으로 남아 있다.

정부가 전세난을 잡기 위해 지난 2009년 도입했지만 공급과잉으로 도심 난개발의 원흉으로 전락한 도시형생활주택 매입규모를 늘리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주로 역세권 주변에 공급됐음에도 전체 입주율이 30%에 불과한 만큼 정부가 직접 매입에 나서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 도심 내 젊은층을 위한 주택공급과 주민들과의 갈등 해소 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행복주택은 시범사업조차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행복주택을 짓는 금액을 활용해 내년부터 지급되는 주택바우처 금액을 상향시키거나 뉴타운 등 정비사업이 무산된 곳의 주거지 요건을 개선하는 등의 유연한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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