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찌라시'의 사회학


"긴급뉴스를 전합니다. 화성인이 침공했습니다." 1938년 10월30일 저녁. 미국 CBS 라디오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거리는 순식간에 공포에 질린 미국인들로 가득 찼다. 피난길에 오른 이들만 120만명. 하지만 이 뉴스는 사실이 아니라 미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디오 드라마로 평가되는 '화성인 침공'의 일부 내용이었다. 대공황의 공포와 사회 불신, 원하는 것만 들으려 하는 심리가 미국 사회를 대소동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독일의 변호사 미하엘 셸레는 저서 '소문, 나를 파괴하는 정체불명의 괴물'에서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다"고 주장했다.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택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선택. 그래서 때론 진실이 뜬소문에 압도당하기도 한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떠도는 찌라시가 대표적이다. '뿌리다'는 뜻의 일본어 '지라스'에서 변형된 '찌라시'는 원래 전단지라는 뜻을 담고 있었지만 이후 연예계와 정ㆍ재계 주변에 흘러 다니는 소문을 주워담는 정보지로 변해갔다. 물론 사실 여부는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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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찌라시는 불신에 대한 반항에서 비롯됐다. 언론 암흑기였던 1970~1980년대 중반 국민들은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찌라시를 통해 돌아다니던 '유비통신'또는 '카더라방송'에 귀를 귀울였다. 언론 통제에 대항한 대중의 보이지 않는 정보항거인 셈. 하지만 민간정부 이후 진행된 정치, 사회 민주화와 2000년대 인터넷과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기술(IT)의 급속한 발전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e메일과 메신저는 통제되지 않는 정보의 홍수를 이끌어냈고 찌라시는 정보 수단이 아닌 루머의 확대재생산지로 전락했다.

△최근 검찰이 찌라시와 인터넷을 통해 유명 방송사 아나운서와 가수, 운동선수 등의 악성 루머를 퍼뜨린 기자와 블로그 운영자 등 2명을 명예훼손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8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만이 전부는 아닐 터. 아직도 욕설과 비방, 개인 사생활을 발가벗기는 관음증, 몰카와 음란물이 넘쳐나니…. 우리는 언제쯤이나 무책임과 익명성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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