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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철학이라 하면 으레 서양의 그것을 떠올리고, 당장 소크라테스니 헤겔, 니체 등을 얘기한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운 대로 소피스트들의 궤변을 얘기하고 나아가 제논의 역설까지도 떠올린다. 보통 정밀한 이론이야 모른대도 한 두 마디 정도는 던질 상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철학이라면 약간 다르다. 바로 사주니 관상이니 하며, 심지어 무당의 살풀이ㆍ작두타기까지 이어지기 십상이다. 공자의 논어 첫 구절 '學而時習之(배우고 제 때에 익히니)…'정도라도 나오면 양반이다.
한글 전용화 바람의 세례를 받은 20대 후반까지는 더 하다. 게다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몰아가는 논리까지 나오면서, 동양철학은 유교철학을 필두로 제자백가가 모두 된서리를 맞았다. 살아남은 것은 노자ㆍ장자 정도일까.
그 가운데 동양철학에서의 논리학, 특히 치열한 논변을 다룬 책이 나왔다. 신간 '쟁경'은 공자ㆍ맹자ㆍ자공 등 유교철학의 주요 성인을 비롯해, 흔히 제자백가로 표현되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청나라까지 다양한 사상가들의 '말싸움'을 풀어놓는다. 작게는 사람을 움직이고, 크게는 중국의 지형을 바꾸었던 결정적인 순간들의 기록이다.
소위 인권변호사였던 등석, 국력이 약한 나라를 강대국 틈에서 지켜낸 자산과 자공, 절묘한 비유로 진리를 드러낸 공자, 상대를 감동시켜 설득하는 기술을 가르친 귀곡자, 천생 말더듬이었으나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 합종연횡책의 소진과 장의, 다민족 왕조 청나라의 지배체제를 확립한 옹정제 등 중국 역사와 사상의 주인공들을 더듬어 간다.
중국 논리학계의 권위자인 자오촨둥 감남사범대학교 중문과 교수는 이 책에서 춘추ㆍ전국시대에서 청나라까지 중국 역사에서 빼어난 논변을 펼친 100명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체를 4부로 나누어, 1부에서는 춘추ㆍ전국시대라는 어지러운 형국에서 일어난 제자백가와 책사들의 논변을, 2부에서는 양한ㆍ위진 남북조 시대의 인물들을 다룬다. 이어 3부에서는 궁정 논변의 황금기인 당ㆍ송나라 시대를, 끝으로 4부에서는 소수민족 정권과 함께 논변의 격변기를 맞이하는 원ㆍ명ㆍ청나라 시대를 정리한다.
참고한 원전만 해도 한나라 왕충의 비판 철학서 '논형', 전한 시기 환관의 정치경제 토론집 '염철론', 당태종과 신하들의 정치 문답집 '정관정요', 송나라 사마광의 역사서 '자치통감' 등 그 분량이 엄청나다. 나아가 한유ㆍ백거이ㆍ구양수ㆍ왕안석 등 당송 팔대가의 문장은 물론이요, 명나라 왕양명의 철학 논쟁서 '전습록'과 이지의 '분서', 5,000년 중국 정사를 기록한 '사기''한서''삼국지''구당서''원사' 등 25사까지 아우른다.
끝으로 인상적인 논변 한토막. 불교신앙이 왕성했던 양나라에서 무신론을 주장했지만 양무제도 처벌 못하고 고위직을 유지해준 범진. 불교의 '인과응보'를 믿으라는 제나라 경릉왕에게 "인생은 나무에 핀 꽃과 같습니다. 어떤 꽃은 주렴에 스쳐 비단 방석 위에, 어떤 꽃은 울타리 넘어 뒷간 흙탕에 떨어집니다. 비단 방석 위의 꽃이 전하(경릉왕)이고 흙탕의 꽃은 소신(범진) 입니다. 비록 우리들의 귀함과 천함은 크게 다르지만, 인연과 응보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되묻는다. 3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