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 순위 13위의 쌍용건설이 끝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건설업계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후방 산업에 대한 영향이 큰 건설업이 무너질 경우 겨우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국내 경기가 자칫 다시 위축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건설 경기가 회복세를 띨 때까지 한시적으로라도 건설사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수주급감-실적악화' 악순환=건설업계의 위기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작됐다. 금융위기로 국내 경기가 침체되자 주택 및 건설시장은 얼어붙었다. 수주물량이 곤두박질치고 미분양은 쌓이면서 부실의 늪에 빠지게 된 것.
수년째 계속된 건설 경기 불황은 고스란히 적자로 이어졌다. 지난해 상장 건설사 3곳 중 1곳 이상이 적자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4곳 중 1곳은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금융감독원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두산건설은 당기순손실이 6,540억원으로 적자규모가 가장 컸고 쌍용건설(4,114억원), 금호산업(3,749억원), 남광토건(2,922억원), 삼부토건(871억원), ㈜삼호(352억원), 코오롱글로벌(271억원), 경남기업(243억원) 등이 2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냈다.
상장 건설사 6곳은 실적악화로 자본금이 줄어 자본잠식 상태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쌍용건설ㆍ한일건설은 자본금을 모두 까먹고 부채로 버티는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상황이다. 금호산업은 완전자본잠식은 아니지만 자본잠식률이 97.4%에 달했고 삼호 43.3%, 두산건설 31.0%, 신원종합개발 15.1% 등이었다.
벽산건설ㆍ남광토건ㆍ범양건영 등은 완전자본잠식이 되며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간 상태다.
지난해 말까지 시공능력 순위 상위 100개 건설사 가운데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중인 건설사는 무려 20개에 달한다.
건설업계는 올해 회사채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만기도래 채권이 몰려 위기 건설사가 추가로 생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 회사채 44조원 가운데 건설업이 4조4,000억원이다. 또 금융업계 추산 결과 올해 기준으로 현금성 자산 대비 회사채와 PF 관련 대출 등을 합친 총 유동성 부담액은 한화건설 1조4,000억원, 한라건설 1조5,000억원, 두산건설 2조4,000억원, 코오롱글로벌 8,100억원, 동부건설 7,100억원, 계룡건설 4,500억원 등이다.
◇유동성 지원 및 시장 활성화 정책 시급=이런 가운데 건설업의 환경은 여전히 어둡다. 지난해 국내 건설공사 수주액은 2006년 이후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올해도 건설사들은 국내 수주 목표를 하향 조정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두성규 박사는 "올해도 건설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며 "업체들의 자구노력만으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자금조달 규모를 한 푼이라도 늘릴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올해 2조3,000억원이 발행될 예정인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의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직접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건설사들의 채권을 묶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발행하는 담보부증권. P-CBO 발행으로 건설사들이 조달할 수 있는 자금은 전체 발행액의 절반인 1조1,000억여원에 불과해 이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상호 대한건설협회 SOC 주택실장은 "건설공제조합과 대한주택보증이 인수해야 하는 후순위채 규모가 커지는 문제가 있지만 시급한 중소 건설사들의 유동성 확보를 위해 발행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조건이 까다로워 이용실적이 부진한 공공공사 미확정채권담보대출(브리지론)의 활성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으로 공급되는 브리지론의 지난해 설정액 5,000억원 중 실제 집행된 것은 1,000억원 미만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밖에 은행 등 채권단의 협조와 정부 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최 실장은 "건설사들이 회생하기 위해서는 채권단의 관심과 지원이 가장 중요한 전제"라며 "채권단의 지원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정부의 컨트롤타워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건설업계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건설 경기 회복인 만큼 이를 견인해낼 수 있는 정책들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건설사 부실화의 주범인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고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어야 유동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 금융규제 완화 등 시장의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 정책이 조속히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