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0년 동안 사기를 쳤으니 이제는 제대로 할 때도 됐죠."
얼마 전 기자가 만난 한 증권사 사장의 고백이다. 충격이었다. 40년 동안 사기를 쳤는데 아직까지 잡히지 않았다니. 잠시 후 그 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증권업계는 그동안 거래대금 수수료에만 의존해왔습니다. 고객의 수익률보다는 고객이 얼마나 많이 거래해 수수료 수입을 챙기느냐가 직원을 평가하는 잣대였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제 고객의 수익률로 직원을 평가할 것입니다."
설명은 장황했다. 아무리 양보해도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일을 이제 와서야 하겠다며 이런저런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그의 언사는 듣기에 불편했다. 올 상반기에 국내 주식시장 거래대금이 666조원대로 8년 만에 가장 적었다. 거래대금 수수료는 더 이상 증권사의 먹거리가 아닌 것은 온 세상에 입증된 마당 아닌가.
실제 '개미'가 주요 고객인 증권사 리테일 영업맨들은 고객의 수익률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기 월급봉투가 두둑해지려면 고객이 거래를 많이 하도록 유도하기만 하면 된다. "5%만 올라도 고객에게 팔라고 하죠. 더 좋은 종목이 있다고 추천하면서요. 하지만 사실은 그 종목 잘 몰라요. 거래대금 늘려서 수수료 수익 올려야 인센티브를 받으니까 무조건 팔고 다른 종목 사라고 하는 거죠." 기자가 여의도에서 만난 증권맨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말이다. 영화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에 나오는 '표독한 판매원'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떠오르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어찌 보면 최근 증권업의 위기는 '타락한 늑대들'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 있다. 엄청난 정보 속에 돈을 벌기 위해 주식시장에 돈을 넣는 일반 투자자들은 증권맨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쓰레기 정보를 걸러내고 정확한 분석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거래를 할 수 있지만 '피 같은 돈'을 증권맨들에게 지불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들의 속내는 기대와 달랐다. 투자에 실패하고 온갖 상처만 입고 결국 주식시장을 떠나는 일반 투자자들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다.
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일부 증권사가 추진하는 고객수익률 중심 경영은 어쨌든 기대를 걸어볼 만한 일이다. 이제라도 증권사가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해나가겠다는 그들의 노력에서 작은 희망을 본다. 고객수익률 중심 문화가 여의도에 정착된다면 실망했던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다. 정직하게 열심히 일한 증권맨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다면 그 직원에게 돌아갈 인센티브를 어떤 투자자가 아까워하겠는가.
이제라도 투자자들의 편에 서야 한다. 그래야 증권업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