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신탁통치시대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기업들의 고민이 한층 심각해졌다. 생존전략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으면 안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어느정도의 감량경영으로 버텨올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IMF라는 변수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그만큼 절박해진 것이다.기업들의 구조조정 노력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손쉬운 감원에서부터 조직축소, 한계사업정리, 임금동결내지 삭감 등이다. 이 가운데서 주목을 끄는 것이 감원을 대신한 임금삭감과 순환식 휴무제다. 두 경우 모두 직장동료를 내보내느니 임금이 깎이더라도 고통을 함께 하겠다는 공존의식의 발로다. 서로를 아껴주는 이같은 정신이 살아 있는 한 한국의 장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감원없는 임금삭감은 대우그룹이 택했다. 대우는 인력을 감축하지 않는 대신 임원급은 15%, 과장급이상 간부는 10%의 임금을 각각 삭감키로 했다. 나머지 직원들은 임금을 동결, 「감원없는 고통분담」원칙을 확인했다.
울산의 자동차부품 생산업체인 한국프랜지는 이달부터 부장급 이하 1천1백명 전사원을 40개조로 나누어 「순환식 보름휴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 회사 노사는 당초 구조조정차원에서 30%의 인력을 줄이기로 합의까지 했다. 그러나 함께 고통을 분담하자는 인식이 대세를 이루면서 순환식 휴가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보름휴가제 실시로 1인당 평균 30%의 급여를 삭감당하게 됐지만 사원들은 『동료가 직장을 잃는 것보다 낫다』고 흔쾌히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 두 기업의 감원없는 경영위기 타개책은 위기해법의 한 모델케이스라는 관점에서 의미가 크다. 요즘 고용불안이 사회전반으로 확산돼나가는 어려운 판국이다.
벌써 IMF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민간연구기관들 가운데는 내년중 최대 1백70만명의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는 곳도 있다. 그래서 대우나 한국프랜지의 노사간 「고통분담」정신은 우리재계에 신선한 충격이다.
지난 93년 독일의 폴크스바겐 자동차는 경영난에 봉착, 한시적으로 주4일 근무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고용은 보장하되 실질적으로 임금을 20% 줄이는 효과를 거둔 것이다. 폭스바겐은 유럽형인 이 제도를 도입, 재기에 성공했다. 우리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다.
감원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근로자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려울 수록 함께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