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10조원 규모로 성장한 퇴직연금 시장에서 은행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한때 점유율 면에서 은행을 압도했던 생명보험사들은 전업권 1위인 삼성생명 외에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어 은행권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모습이다.
10일 금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퇴직연금 시장 규모가 사상 처음 110조원을 돌파해 110조2,667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업권별로는 은행이 시장의 50.2%를 차지, 압도적인 격차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어 생보사(25.3%), 증권사(17.2%), 손보사(6.8%) 순이다.
업권별 적립금 증가 속도 차이도 커 은행권은 2013년 33조5,911억원에서 지난 6월 55조3,008억원을 기록하며 2년 반 만에 22조원 이상 증가했지만 같은 기간 생보사들은 16조76억원에서 27조8,958억원으로 11조원가량 느는 데 그쳤다.
생보사들은 이 같은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다. 퇴직연금이 도입되기 전인 퇴직보험 시장에서는 생보사들이 상당한 격차로 우위를 지켰기 때문이다. 실제 2003년 생보 업계의 퇴직보험 적립액은 12조원에 달한 반면 은행권은 3조원에 그쳤다. 퇴직보험이 의무보험이 아니었던 탓에 은행들이 시장 공략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5년 퇴직연금 도입 후 상황이 달라졌다. 퇴직연금을 신규 도입한 중소업체들이 기존에 거래가 있던 은행에 잇따라 돈을 맡기며 전세가 역전된 탓이다. 실제 2008년 5월 은행이 생보사 적립액을 추월한 후 현재는 적립액만 2배가량 차이가 나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175만여 사업장 중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한 사업장은 전체의 16.5%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은행권의 약진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점 수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데다 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면서 보험사가 우위를 갖고 있던 금리 부분에서도 이제 은행과 별 차이가 없는 실정"이라며 "향후 퇴직연금 시장은 은행들 간의 주도권 싸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 계열 보험사들은 관계사들과의 '캡티브 마켓'을 활용하거나 퇴직보험 운용 시절 거래했던 기업들 돈을 유치하는 방식으로 은행들을 견제하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을 뒤집기는 힘든 상황이다. 실제 전체 퇴직연금 시장의 15.7%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경우 가입자 수는 112만명으로 신한은행(153만명)과 국민은행(158만명)에 못 미치지만 적립금은 17조3,622억원으로 신한은행(10조1,842억원)과 국민은행(9조4,597억원)을 크게 앞서 있을 정도로 대기업 의존도가 높다.
올 상반기 현재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 중 77%가 이미 퇴직연금에 가입하는 등 대기업 퇴직연금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보험 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은 지점이 많고 대출상품 등으로 여러 기업과 이어져 있기 때문에 퇴직연금을 신규 도입하는 중소업체를 공략하는 데 최적화돼 있을 수밖에 없다"며 "대형사도 퇴직연금 사업으로 인한 수익이 아직 미미한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소규모 업체들은 관련 시장에서 몇 년 내로 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