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문화처방/유재용 소설가(로터리)

내 소설이 처음 실린 문예지가 서점에 나온 때는 1968년 12월10일쯤이었다. 나는 책이 집으로 배달되기까지 진득하니 기다리지 못하고 도심지로 서점을 찾아 나섰다. 아침기온이 영하10도를 밑돌았고 한낮의 기온도 영하를 벗어나지 못한 추운 날씨였다. 그러나 서점에 들어가 권위있는 문예지에 내 소설과 사진과 당선소감이 실린 사실을 확인하고 나온 나는 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일시적인 마비현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내 몸 깊은 곳에서 열이 솟아 퍼져 온몸이 후끈거렸다. 성취감이 추위를 밀어낸 것이다.사람이 살아가는 데 성취감이 가장 중요한 활력소라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개개인이 부딪친 어려움을 극복해내는데도 성취욕, 성취감보다 더 좋은 처방이나 약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성취욕, 성취감을 가장 적은 비용으로 얻을 수 있는 분야가 건전한 문화다. 성취감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 과정은 구도하는 정신의 행로다. 공허는 그러한 과정을 통해야 메워진다. 성취가 올바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허황된 과시욕을 통해 공허를 메우려는 방향으로 길을 잘못 접어들게 된다. 분수에 넘치는 소비, 분수에 넘치는 사치의 원인이 거기에 있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값진 옷과 가구를 사는 것과 값진 음식을 사먹는 것이 흔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마약중독 같아서 정신과 영혼을 황폐하게 할 뿐이다. 요즘 공공단체와 사설단체 곳곳에서 문화센터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주부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취미와 적성에 맞는 분야를 택해 수강하고 있다. 그들은 성취의 힘든 과정을 체험하면서 문인, 화가, 서예가, 사진작가 등으로 립신하는 성취를 가슴에 안기도 한다. 적은 비용으로 충족감과 안정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경제·사회가 좀 어려워지는가 하면 절제와 검소를 외치며 문화활동부터 줄이려고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주 잘못된 인식이다. 침체한 국민의 사기와 의욕을 진작시키는 데 가장 훌륭한 처방은 건전한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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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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