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元(도서출판 삶과꿈 대표)금년 42세의 재일교포 벤처 기업인 손정의(孫正義)씨가 일본 최고의 갑부(甲富)가 되었다는 신문기사는 대단한 성공 스토리이다. 한국사람이라면 우습게 알고 멸시 차별하는 일본사회에서 무일푼으로 사업을 시작, 단시일에 최고 갑부 자리에 뛰어 올랐다는 사실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너무 가난해 일본으로 건너가 광부가 된 한국인의 손자로서, 손정의씨는 규슈사가껜(佐賀縣)의 철도선로 옆 무허가 판자집에서 태어났다. 호적에 번지도 올라 있지 않은 집이었다. 어머니는 소주를 밀조(密造)해서 팔았기 때문에 늘 경찰에 쫓기는 몸이었고, 가축먹이를 위해 리어카를 끌고 근처 식당으로 음식물 찌꺼기를 얻으러 다니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 리어카에 나이 어린 손정의씨가 실려 다녔는데, 음식물 찌꺼기의 시디신 냄새, 넘쳐 흐르는 국물의 끈적한 느낌이 싫어 “언젠가 이 수렁에서 빠져 나와 반드시 햇빛을 보겠다”는 결심을 했노라고 소니의 오가 노리오(大賀典雄)회장과 대담(對談)한 책에서 자신을 회고하고 있다.
요근래 기업인들과 만나면 심심치 않게 손정의씨가 창업한 소프트 뱅크와 그자(子)회사 야후저팬의 주가(株價)가 하늘 높은줄 모르게 뛰고 있는 것이 화제가되곤 하는데, 얘기끝에 “만일 손정의씨가 한국에서 사업을 했더라면 한국 제일의 갑부가 될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 아닌 질문이 나온다. 활발한 논란 후의 결론은 “잘 해야 중소기업 사장 정도나 되었을까?”하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특히 사업가를 키워주지도 않고 발목 잡는 일들이 너무 많다는 설명이었다.
우리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갑부다운 갑부가 있었는지 별로 전해지는 것이 없다. 절대왕권체제에서 치부(致富)하는 방법이 있었다면 지주(地主)가 소작인들을 가혹하게 착취하거나, 장사꾼이 눈속임으로 폭리·모리(謀利)하든가, 관리(官吏)가 온갖 작폐로 백성들은 등쳐 갈취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부자, 있는 자, 잘사는 자는 곧 나쁘다」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여러 혼란기를 거치면서 지금도 「치부방법이나 있는 자에 대한 이미지」는 결코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은 머리가 좋고 재주가 많아 한국을 벗어나면 크게 성공, 이름을 떨치는 사람들이 많다. 해외진출의 길이 열린 최근 넓은 천지에서 마음껏 자기기량을 펴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래서 “큰나라로 나가야 큰다”는 생각이 지배적으로 깔려 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재벌구조조정은 괜찮은 기업들을 외국인에게 팔아야만 살 수 있는 해결점으로 귀결됐다. 국내에서는 외국인에게 팔고, 외국에 나가 세계적인 인물, 세계적인 기업으로 커야 할 숙명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