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사람이 미래다] "스펙보다 스토리" 창의 인재 확보에 공들여

삼성·현대차·SK·LG그룹 등 공채제도 속속 변경

"기업 기본은 인재 발굴·육성" 불황에도 채용 지속

지난 10월 치러진 현대차그룹 인적성검사를 마친 취업준비생들이 고시장을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역사관과 창의적 사고를 지닌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인적성검사에 역사 에세이를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기업들에게 올 한해는 말 그대로 '악전고투'한 해로 기억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전 산업분야에 걸쳐 업황이 악화되고 중국 기업의 거센 공세와 엔저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의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이 때문에 구조조정을 통해 감원을 실시한 기업도 상당수다. 하지만 주요 기업들은 신입 채용 규모는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이지 않았다. 삼성그룹은 올 하반기에 4,000명이 넘는 신입 직원을 선발했고 현대차도 2,500명 가량을 뽑았다. SK와 LG도 각각 1,000명과 2,500명을 새 가족으로 맞았다. 기업들이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신입 채용 규모를 예년처럼 유지한 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기업의 기본은 인재 발굴과 육성이라는 점을 오랜 기간에 걸친 경험칙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은 우수 인재를 뽑아 육성하는 것 못지 않게 외부 인재를 영입하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고도화된 산업 구조를 극복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기 위해 창의적인 인재를 확보하는데 특히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 '스펙' 중심의 채용 방식에서 벗어나 '스토리'를 지닌 인재를 선발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우수 인재 확보는 최고경영자의 핵심 업무=국내 기업들은 내부 인재 육성은 물론 외부 인재 영입에 적극적이다.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조기에 성과를 거두려면 이미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외부에서 수혈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내외에서 핵심 인재를 유치하는 것은 기업 오너는 물론 최고경영자(CEO)의 핵심 업무가 된 지 오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2002년 전자 사장단과 임원들에게 "앞으로 나 자신의 업무 절반 이상을 핵심 인력 확보에 두겠다"며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고 이를 뽑기 위해 사장이 얼마나 챙기고 있으며 확보한 핵심 인재를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사장 평가 항목에 반영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이 같은 지시에 그해부터 연말 사장단 업적 평가에서 30%를 핵심 인력 확보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삼성의 최고경영자(CEO)들은 해외 출장을 활용해 현지 우수 인재를 등용하고, 그룹 차원에서는 미국 등지에서 매년 이공계 우수 인력들을 모아 채용 설명회를 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11년부터 해외 석·박사 및 경력사원을 대상으로 한 채용 프로그램인 '현대 글로벌 톱 탤런트 포럼'을 열고 있다. 선발된 박사급 우수 인력에게는 학위 취득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하고 졸업 후 채용한다.

구본무 LG 회장 역시 우수한 연구개발(R&D)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석·박사급 인재 채용의 장인 'LG 테크노 콘퍼런스'에도 3년째 직접 참석하고 있다. 구 회장은 이공계 유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개최되는 인재 채용 행사에도 계열사 CEO들과 함께 직접 찾고 있다.


SK도 지난 6월 미국 실리콘밸리와 미시간·보스턴 등에서 임형규 부회장을 비롯해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글로벌 포럼을 개최하고 주력 사업인 정보통신기술(ICT)과 에너지 화학분야 우수 전문가 인력을 초청, 그룹의 비즈니스 현황을 설명했다. 올해로 3년째 개최하고 있는 이 포럼을 통해 SK는 글로벌 인재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우수 인력을 영입하는 창구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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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인재 발굴·양성 위해 채용제도 속속 변경=외부 인재를 영입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단기 성과를 내는 것 못지 않게 내부에서 인재를 발굴, 육성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필수적이다. 특히 경영 환경이 글로벌화되고 새로운 먹거리 발굴이 현안으로 대두되면서 기존 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춘 인재 발굴을 위해 채용 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학점이나 어학성적·자격증·수상경력·봉사활동 등 스펙 보다는 직무적합성과 역사관, 소통 능력, 상상력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채용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삼성은 내년 하반기부터 3급 신입사원 채용방식에 변화를 주기로 하고 직무적합성 평가를 통과한 사람만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응시자격을 부여한다. 직무적합성평가는 지원자의 출신대학 같은 직무와 관계없는 스펙은 보지 않고 오로지 직군별로 필요한 직무역량만을 평가한다. 또 실무면접과 임원면접으로 구성되는 면접전형에는 중간에 창의성면접이 추가된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들어 역사와 인문학을 인재 육성의 주요 키워드로 삼고 있다. 정몽구 회장이 글로벌 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뚜렷한 역사관을 꼽으며 역사교육을 통한 직원들의 투철한 역사의식 함양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하반기 대졸공채의 인적성검사(HMAT)부터 역사와 관련한 에세이를 쓰는 문제를 출제해 이공계 학생들에게 한국사 교육과 인문학적 소양 강화를 강조하며 인문학과 이공계의 통섭을 시도했다.

SK는 '스티브 잡스형'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학교·성별·나이·학점·어학점수 등의 장벽을 모두 없애고 대신 개인 오디션 형태의 예선을 통과한 지원자들의 별도 합숙에서의 과제 수행 능력만으로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바이킹 챌린지'를 시행하고 있다.

LG도 스펙 보다 실무에 강한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올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공채부터 자기소개서 항목에 있는 공인 어학 성적과 자격증·수상경력·어학연수·인턴·봉사활동 등의 항목을 삭제했다. 대신 지원자들의 실제 직무수행 역량을 심층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직무 관련 경험이나 역량 등을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LG는 또 전공 분야와 인문학적 소양을 결합해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한국사와 한자 능력도 인·적성 검사에서 평가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환경이 복잡해지고 협업이 갈수록 중시되는 흐름에 맞춰 기업들이 단순 지식이나 어학 능력과 같은 '스펙형 인재' 보다는 융합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스토리형 인재'를 선호하고 있다"며 "우수 인재를 발굴, 채용하는 것 못지 않게 이들을 핵심 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내부 교육프로그램을 강화하고 비전을 제시·공유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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