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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65> 북한산성


군사적인 면에서 조선 전기와 후기는 차이를 보인다. 전기가 주로 이민족들과의 충돌에 대비한 국경방위에 치중했다면 후기는 수도 방어에 주력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잇따라 수도 한양이 함락당한 경험은 국왕과 조선정부의 전략적인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어쨌든 수도는 지켜야 한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한양 도성을 견고히 하고 주위에 방어거점을 쌓아 나갔다. 도성의 성벽을 더 높이고 단단히 했으며 남한산성과 강화성을 보강했다. 최종적인 노력은 북한산성의 건설로 나타났다. 원래 있던 고려 중흥산성을 이어받아 함락되지 않을 견고한 산성을 만들었다. 1711년(숙종 37) 13㎞의 북한산성이 마무리됐다.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이다. 이어 산성 안에 행궁도 세워지고 1714년까지 내성에 해당하는 '중성'도 완성됐다. 다만 북한산성이 실제 전쟁에 사용된 적은 없다. 이후의 적들은 바다를 통해 스며들어와 서울과 조선을 삼켰기 때문이다. 북한산성은 지금도 그대로다. 험한 지형에 세워져 유적의 훼손이 적었고 현대에 들어와 복원도 꾸준히 이뤄졌다. 사진은 중성의 현관격인 중성문(中城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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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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