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주가지수 6백P 붕괴/김정태 동원증권 사장(특별기고)

기아사태의 장기화와 정치권의 비자금 파문이 주식시장에도 예외없이 밀어닥치고 있다. 기아사태가 발생한지 세달만에 종합주가지수는 1백80포인트가량 하락하여 급기야 6백포인트를 하향 돌파함으로써 5년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말았고 이 과정에서 시가총액은 30조원이나 줄어들었다. 연일 이어지는 기업의 도산,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는 금리, 외환시장의 불안정 등 그간 우리경제가 우려했던 모든 최악의 상황이 한꺼번에 현실화되고 있다.물론 원인은 다양하다. 첫째로는 무엇보다도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기업의 체질이 약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미 경제의 패러다임이 실속없는 외형경쟁에서 실질적인 수익성추구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을 담보로 대규모 투자를 능사로 생각했던 과거의 기업경영풍토가 지속되면서 유례없는 고비용·저효율구조가 고착됐고 결국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대기업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구조조정의 열풍이 불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둘째는 기아문제로 요약되는 대기업의 부도와 이들에 무조건적인 대출을 일삼아 온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채권이 이번 주식시장을 비롯한 금융, 외환시장 불안의 핵심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원인과 함께 이를 효과적으로 처방하지 못한 정책당국의 실기와 무사안일의 태도도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기아그룹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이 결여된 정책으로 인해 정부, 금융기관, 기업간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점이 앞으로 경제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 큰 제약이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는 외국인이란 독립변수이다. 92년 주식시장을 개방한 이래 외국인들은 지속적인 순매수를 통해 시장의 안정성을 보장해줬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외국인투자자의 한국시장에 대한 태도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고도성장을 담보로 지속적인 투자유인에 성공한 우리경제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말미암아 지속적인 성장에 제약을 받게 됐고 급기야는 경제의 주력인 대기업들이 금융비용을 보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름으로써 외국인들이 안정성에 대해 위험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국가, 금융기관, 주력 대기업에 대한 대외신인도 저하는 만성적인 자본수요국인 우리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는 채무상환에 대한 부담가중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외자조달의 어려움 증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넷째로는 정치권의 비자금파문을 들 수 있다. 비자금파문이 확산될 수록 경제주체들과 외국인투자자들의 불안심리를 야기시킬 수밖에 없고, 이러한 불안감이 주식시장에서는 무조건 팔고 보자는 매도심리를 부추기는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6백포인트 아래로 무너진 것은 분명 매우 긴급한 상황이다. 어찌보면 이제까지 멍들어 온 경제를 더이상 방치하는 것은 파국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생적인, 시장의 원리에 맡기는 자세를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제까지 섣부른 정책개입으로 수많은 시장의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정책당국자들이 나서서 경제주체들의 불안감을 해소하는데 역점을 둘 때라고 본다. 기아문제에 대한 대승적인 결단을 통해 무너진 금융시장의 신뢰를 복원하고, 외환수급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청사진을 마련함으로써 대내외에 우리경제의 가능성을 과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기업들의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경제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긍정적인 지원을 지속하는 것이 마땅하다. 끝으로 주식시장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주식투자는 배당투자의 기회, 시세차익의 기회, 경영권향유의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증시는 주주들의 이익을 철저히 배제하여 단지 시세차익을 위한 욕구만을 키워 놓았을 뿐이다. 시가배당, 장기투자자에 대한 세제혜택, M&A제도의 명실상부한 활성화, 소액투자자 보호 등의 정책을 하나씩 하나씩 단계적으로 추진, 정착시켜 나가야만 주식시장이 기업의 자금조달의 장으로서, 또한 투자자들의 자금운용의 장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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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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