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보건 예산 4%로 줄여놓고 이제 와 남 탓하는 정치권

메르스 사태가 확산되면서 보건당국의 뒷북 대응이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초동진압에 실패하고 메르스의 실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 등을 보면 보건당국의 실책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보건당국의 부실한 대처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제대로 따져보면 무조건 보건당국 탓만 하기도 쉽지 않다.


이번에 많은 병원은 메르스 환자를 치료하는 데 꼭 필요한 음압시설이 없어 애를 먹었다. 가장 많은 확진환자가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조차 정식 음압시설을 갖추지 않았다. 음압시설은 운영하는 데 상당한 공간과 비용, 전문성이 필요한 반면 수익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음압시설을 갖추지 않은 병원을 탓할 게 아니라 국가가 감염 인프라 구축 차원에서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의료계는 그동안 적극적인 감염관리를 위해 별도의 인력과 시설 등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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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추산에 따르면 음압시설을 포함해 병원의 감염관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는 모두 4,000억~5,000억원이 소요된다. 정치권이 진작에 이 예산을 마련하고 정부가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면 메르스 사태를 훨씬 일찍 해결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올해 보건복지부 전체 예산에서 보건의료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4%(2조2,000억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불가능한 얘기다.

보건의료 예산이 이렇게 미미한 데는 이유가 있다. 올해 복지부 예산 51조9,000억원 중 80%인 41조9,000억원이 복지예산이다. 9조9,000억이 보건예산인데 그나마 7조7,000억원은 건강보험예산이다. 정치권이 포퓰리즘에 빠져 복지에만 정신을 파는 사이 메르스가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근 메르스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보건당국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보건당국 관계자 가운데 책임질 사람들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책임의 크기로 치면 메르스를 이렇게까지 키운 정치인들이 가장 크게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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