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안철수 신드롬' 단상


윈스턴 처칠 경은 선거를 한번 치를 때마다 수명이 한달씩 단축되는 것 같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정치의 달인이 이런 말을 했다면 선거가 얼마나 힘든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출마자가 적어 아쉬운 선거는 없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을 앞질러 성급한 선거바람이 뜨겁다.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온통 두어달 후 치러질 서울시장 선거에 함몰된 형국이다.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교수가 기름역할을 하고 있다. 시민운동가 박원순에 양보함으로써 서울시장 출마는 불발됐지만 내노라하는 기성 정치권이 넋을 잃고 안절부절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정치의 기존 셈법이 안통할 정도로 충격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빗나간 지방자치의 반작용 비록 젊은층이 주축이라지만 단번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기존 정치에 대한 실망과 새로운 정치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폭발적인 인기의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적어도 한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크게보면 기성 정치 전반, 좁게보면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에 대한 염증, 새로운 변화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안철수 신드롬의 동인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반한나라당 기치를 내걸고 서울시정에 대한 고강도 비판을 서슴치 않는 안교수에 대해 시민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오세훈식 시정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오 전 시장의 참패로 끝난 서울시의 주민투표 결과가 단순히 학생들의 급식문제에 대한 선택만은 아니었다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전시용 사업위주의 시정방식에 대한 서울시민의 준엄한 심판이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제 지방자치를 성역의 온실에서 꺼집어 내 국가발전과 국민의 입장에서 냉정한 심판을 내릴 때가 됐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처럼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지방자치도 드물다. 대체 지방자치가 뭐길래 온 나라가 이 난리를 쳐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적지않은 연륜이 쌓였지만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지역살림을 위한 지자체 선거가 총선 대선 뺨치게 극심한 이념대결의 장으로 변질 된 것부터가 문제다. 단순화하면 어린 학생들 밥먹이는 문제에 이념을 과잉투영해 진흙탕 싸움이 된 서울시의 주민투표는 빗나간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예상낭비를 동반하는 전시행정은 어디서나 목격된다. 아방궁같은 청사짓기, 지역발전이나 주민의 삶의 질과는 동떨어진 정치용 사업에 열을 올린 나머지 재정이 악화되고 파산위기에 몰리는 지자체들도 늘고 있다. 지방자치가 마치 독립왕국인양 무소불위의 행태를 보이는 꼴불견 지자체장들도 적지않다. 정치발전 위한 밀알 되길 성공한 벤처기업인인 안철수의 정치적 실험이 성공할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일러 보인다. 저명한 저술가 앤드류 수쿠무클러는 정치에 대해 ‘ 사람들이 정의를 추구한다는 희망사항이 아니라 여러 당파가 자기들에게 유리한 불공정을 추구함으로써 가장 위험한 형태의 불공정인 독재정치를 피할수 있다는 기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집어삼킬 사자를 키우지는 않지만 특수한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족재비와 여우들이 득실거리는 곳이 정치라는 것이다. 정치 아마추어의 도전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를 앞두고 느닷없이 돌출한 ‘안철수 신드롬’은 신선한 충격임에 틀림없다. 지방자치든 중앙정치 등 기성 정치가 읽지 못하는 민심을 읽은 것이 힘의 원천이다. 방자한 기성 정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만도 유쾌한 일이다. 후진적인 한국정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밀알이 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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