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하도급법 개정] 현금결제비율 늘어 중기 숨통

불공평한 하도급거래관행이 이제서야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게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발표한 하도급대금 결제방식 개선은 강자의 논리에 따라 일방적으로 진행되던 기존의 관행에 약자의 입장이 대폭 반영되었음을 의미한다.◇개정 배경= 국내 대기업들의 하도급횡포는 외국에까지 잘 알려져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중소기업들은 하도급대금을 외상으로 받더라도 납품선을 잡기 위해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가전회사인 A사는 가전제품용 구동장치를 B전자에 주문하면서 하도급거래대금을 현금 30%와 만기 60일짜리 어음 70%로 지급한다. B사는 구동장치에 쓰이는 지지대를 C공업에 주문하고 현금 10%와 만기 120일짜리 어음 90%를 대금으로 지급한다. C사는 다시 지지대 가공업체인 D정밀에 하도급을 주면서 현금 10%, 만기 150일짜리 어음 90%로 결제한다.」 현재 하도급거래 대금 결제방식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이 결제시스템을 뜯어보면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반이 왜 취약해 질 수밖에 없는 가를 잘 알 수 있다. 어음 만기는 2, 3, 4차 하도급으로 갈수록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반면 현금 결제비중은 대폭 축소되는 형국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이런 결제시스템때문에 연쇄부도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대기업들과 종속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들로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하도급의존도는 지나치게 심하다. 국내 중소기업 중 하도급거래를 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72.2%에 달한다. 중소기업 매출액 가운데 하도급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84.6%에 이른다. 1개 주거래 대기업에 대한 매출의존도가 절반이상을 넘는 중소기업들도 전체의 42%에 이르고 있다. 사정이 이쯤되다보니 그동안 정부의 거창한 중소기업정책도 먹혀들리가 없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하도급법 개정이 추진된 이유는 실물경제 전반에 깔려있는 불공정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다. ◇주요 내용= 이번에 확정된 개정 법률의 골자는 현금결제 비율 유지 어음만기일 유지 하도급대금 직접 지급 의무화 하도급계약서등 서면교부시점 명시 등 크게 4가지다. 오는 4월1일이후 계약이 체결되는 하도급거래는 4가지 조건을 무조건 갖추어야 한다. 원사업자(대기업)는 발주자로부터 결제받은 현금비율이상으로 수급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현금결제 비율은 2, 3, 4차 수급사업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어음결제비중은 줄고 현금결제비중이 자연스레 늘게 되어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들의 만성적 자금난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이와 함께 원사업자는 발주자에게서 받은 어음 만기일을 초과해 하도급업체에게 어음을 교부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60일짜리 어음을 받은 대기업의 경우 하도급업체에게 만기 60일이하의 어음만을 교부할 수 있다. 어음만기일이 단축되면 수취어음의 할인이 용이해지고 중소기업들은 수취어음 부도로 인한 연쇄부도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공정위는 또 원사업자의 부도, 파산의 경우 발주자가 수급사업자에게 하도급대금을 직접 지급토록 의무화했다. 이를 위해 공정위는 원사업자와 발주자, 하도급업체와 원사업자간의 채권관계를 소멸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하도급대금 직접지급제도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임의규정으로 되어있는데다 발주자가 직접 지급을 하려해도 그 금액에 대해서는 가압류, 압류가 설정되는 경우가 많아 유명무실했었다. 공정위가 하도급계약서등 서면교부시점을 명시토록 한 것은 분쟁을 예방하고 원활한 분쟁해결을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사업자들은 하도급업체가 납품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하도급계약서를 교부해야 한다. ◇기대 효과= 이번에 확정된 하도급대금 결제방식은 기업들의 자금흐름에 일대 변화를 몰고올 전망이다. 대기업들은 자금운용계획을 수정해야 할 것이며 반면 중소기업들은 자금난 완화에 큰 보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해 3.4분기 22%에 불과했던 현금결제비중이 높아지고 같은 시기 평균 117일에 달했던 어음만기일도 대폭 단축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번 조치는 또 연쇄부도의 고리를 끊는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편, 공정위는 변화된 하도급대금 결제방식이 빠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직권실태조사와 서면조사를 크게 확대하고 제재강도를 크게 높일 계획이다. 적발된 업체에 대해서는 최고 하도급계약금액의 2배를 과징금으로 물릴 방침이다. 【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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