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토론하면 22兆가 나오나?

서울시는 지난 4일 수해방재 대책을 발표하면서 지하 물길인 하수관거의 용량을 시간당 100mm의 호우가 와도 감당할 수 있도록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앞으로 10년간 17조원 이상의 예산이 들어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또 상습 침수지역에 매년 5,000억원씩 10년에 걸쳐 5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말도 호기롭게 꺼냈다. 발표가 끝나자 무려 22조원이 넘는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지만 시 관계자 누구도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답은 발표자료에 있는 '토론으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낸 뒤 재정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게 전부였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토론으로 22조원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광화문 일대가 폭우로 침수된 후 320억원을 투입해 배수로를 추가 설치하고 하수관을 보강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가 여의치 않아 공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리고 1년이 채 안 된 올 여름, 광화문은 집중호우에 힘 한 번 못 써보고 '물바다'가 됐다. 320억원도 마련하지 못해 광화문을 물에 빠트린 서울시가 22조원을 조달하겠다니 더구나 토론을 하면 22조원이 생긴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혹시 여론의 뭇매를 일단 피하고 볼 심산으로 얼기설기 대책을 엮어 발표한 것은 아닌지 자꾸만 의심이 간다. 서울시는 그동안 무상급식 이슈를 놓고 반대 측과 논쟁할 때마다 '예산마련', '재원조달'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원 조달 방안 없는 정책은 나라가 막다른 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누차 강조하던 것도 선명히 기억난다. 오 시장의 말대로라면 수해방재 대책 탓에 나라가 막다른 길로 가지 않겠는가. 서울시가 이러면 안 된다. 돈을 '어디서, 어떻게 끌어와서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안 그러면 오는 2012년 한여름, 우리는 서울 한복판에 떨어지는 물 폭탄을 또 한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물 폭탄에 이웃과 가족을 또 한 번 속절없이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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