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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기] <30> 북한산 수유동 청자요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것 중에 청자가 있다. 청자를 굽던 가마(청자요ㆍ靑瓷窯)가 지금의 서울에도 있었다는 것은 일제시대부터 알려졌지만 가마터(요지ㆍ 窯址)의 정확한 위치가 드러난 것은 1990년대 후반부터다. 문화재 당국은 2000년대부터 지표조사를 통해 북한산 자락 수유동과 우이동 일대에서 20여 곳의 가마터 위치를 확인하고 일부를 발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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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수유동 청자요지는 그 중 하나다. 고려 말기인 14세기 유적으로 추정되는 이곳에서는 그릇을 굽던 가마 1기와 불량품을 폐기하던 구덩이 1곳이 확인됐다. 가마유적은 길이 19.8m, 폭 1.4~1.6m 규모이며 발굴을 마친 후 맥문동(위쪽 초록색 풀)으로 덮어놓았다. 그리고 앞에 간이전시대를 만들어 출토물(복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의 서울지역에 청자요가 생긴 것은 시대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우선 '남경'의 정치ㆍ경제적 성장과 함께 청자 수요가 급증했다. 이에 따라 소비지 인근에 청자 생산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고려 말 왜구의 습격으로 전남 강진 등 주로 남해안에 있던 청자요의 생산ㆍ공급이 어렵게 됐던 것도 주요한 이유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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