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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다가 정년퇴직도 아니고 뭣도 아니게 된 거죠. 하지만 유럽 투어 시드는 남아 있으니 유럽 무대를 중심으로 뛸 생각입니다."
양용은(42)은 자신의 상황을 직장생활에 비유하며 미국을 벗어나 유럽이나 일본 투어를 뛰며 재기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21일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코오롱 제57회 한국 오픈(23~26일 천안 우정힐스CC)' 기자회견에서 "최근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고 있는데 이번 대회를 계기로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한 양용은은 이듬해 2승을 거뒀다. 특히 8월 메이저대회 PGA 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미국)를 꺾고 우승하면서 아시아 최초의 메이저 챔피언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당시 우승으로 보장 받았던 5년간 PGA 투어 출전권이 올해로 만료됐다. 2013-2014시즌 상금랭킹 177위에 그친 그는 지난달 2부 투어 상위 랭커들과 치른 웹닷컴 투어 파이널스에서도 순위권에 들지 못해 PGA 투어 잔류가 최종 불발됐다. 양용은의 말처럼 아직 창창할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2012년부터 3년 연속 톱10에 한 차례도 진입하지 못한 양용은은 올해는 28개 대회에서 15차례나 컷오프되며 상금 25만달러에 머물렀다. 5월에는 후원사와 계약도 끝났다.
물론 미국 무대에서 계속 뛸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양용은은 "미국에서 우승했던 대회(혼다 클래식, PGA 챔피언십)에는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데이비드 듀발이나 존 댈리도 초청선수로 한 시즌에 10개 이상 대회에 다닌다"며 "메이저대회 우승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어필하면 10개 이상도 나갈 수 있다. 미국에 돌아갈 준비는 항상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에서 주로 뛰며 PGA 투어에도 종종 초청선수로 나가 우승을 통한 복귀를 노리겠다는 얘기다. 그는 "일본 투어 퀄리파잉(Q)스쿨도 혹시나 해서 문을 열어놓을까 생각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양용은은 긴 부진에 대해 "마음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연습 때는 굉장히 잘 맞는데 경기만 하면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망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스스로 목을 졸랐던 것 같아요." 그는 "올 7월부터 코치 없이 비디오로 찍고 분석하면서 스윙이 만족스럽게 변하고 있다"며 "마음의 문제가 더 큰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고 다시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양용은은 지난해 4월 국내에서 열린 유럽 투어 발렌타인 챔피언십 때도 거의 같은 말을 했지만 이후 성적은 더 나빠졌다. 이번에는 자신의 텃밭인 한국 오픈에서 재기 가능성을 시험한다. 이 대회 최근 5차례 출전 기록을 보면 4위 아래로 밀린 적이 없다. 양용은은 대회 통산 3승을 노린다.
한편 올 4월 PGA 투어 취리히 클래식에서 우승한 노승열(23·나이키골프)은 양용은에게 설욕을 선언했다. 4년 전 한국 오픈에서 마지막 날 10타 차 역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2010년 이 대회 우승이 모든 투어를 통틀어 양용은의 마지막 우승이었다. 노승열은 "4년 전 그때는 내가 성장하는 데 많은 경험을 준 일요일이었다"며 "한국 오픈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중국·태국까지 4주간 대회 출전을 끝으로 올해를 마친다. 내년 프레지던츠컵(미국-유럽 제외 세계연합 대항전)에 나가기 위해 이 기간 세계랭킹(현재 99위)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재미동포 케빈 나(31)와 디펜딩 챔피언 강성훈(27·신한금융그룹)도 출전하며 박상현(31·메리츠금융그룹)이 KPGA 투어 3개 대회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한국 오픈에는 국내 최대인 총상금 12억원(우승상금 3억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