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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은 이제 이 땅에서 모든 ‘갑’ 또는 ‘주류’들이 짊어져야 할 의무처럼 여겨지고 있다. 잘나가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받아들여 준 커뮤니티에 대한 감사함을 갖고, 주변의 구성원들을 이성적으로 또는 감성적으로 보살펴야 한다는 관점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SNS, 넓게는 인터넷이 한 몫 톡톡히 했다. 유명인사가 기부를 하거나 소외된 지역을 찾아 장기간 봉사활동을 한 장면이 포착되면 ‘훈훈하다’, ‘개념 있다’ 등의 평이 쏟아지고 순식간에 ‘미담’이 공유되기 시작한다. 당연히 기사보다 우연히 발견(?)된 선행이라면 더욱 파급력 있다. 그 때문인지 연예인뿐만 아니라 기업인들 역시 ‘일부러라도’ 좋은 일을 하려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든, 아니면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해서 시작한 것이든 결과적으로는 좋은 일이다. 방송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은 덜 재미있더라도 알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잊고 살았던 무언가를 다시 일깨워주는 것 역시 일종의 사회적 책임일 것이다.
지난 주 방영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이 교토 우지 시 근처의 우토로 마을을 찾았다. ‘배달’ 시리즈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 콘텐츠는 사랑이 담긴 추억을 세계 곳곳의 한국인들에게 선물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몇몇 멤버들은 칠레, 미국 등을 방문해 잃어버렸던 가족, 또는 경제 활동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는 부인의 사랑을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유독 유재석과 하하가 방문한 우토로 방영 부분이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끈 이유가 있다. 우토로 마을엔 한국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잊고 지냈던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상처가 다시 드러나면서 시청자들이 함께 아파한 것이다. 주민들은 어렵게 생계를 꾸려가며 일본과 한국 양쪽에서 제대로 된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수십 년을 살아 왔다. 게다가 2년 뒤면 개발 계획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었던 제2의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 주민들의 얼굴엔 쓸쓸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우토로 마을의 사연이 방송을 탄 게 처음은 아니다. 사회운동가들이 지금도 열심히 지원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일본 정부에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우토로 이슈가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남의 슬픔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기본적 성향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존의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과는 달리 무한도전은 ‘남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예능’ 그것도 수많은 시청자들이 ‘광팬’을 자처할 만큼 감정이 상당히 이입되어 있는 프로기에 가능한 것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주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연신 “죄송하다”며 눈물을 참아내지 못하는 모습에 시청자 역시 함께 울었다. 방송 이후 지금까지도 2차, 3차로 가공된 콘텐츠들이 SNS에 공유되고 있다. 실제로 한일 관계에 큰 관심이 없었던 20~30대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말 그대로 방송의 사회적 책임성과 공익성을 달성한 기획이었던 셈이다.
시청자는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떠들고 재미만 권하는 방송을 원하지 않는다. 시청률이라는 양적 성과를 위해 재미는 포기하기 힘든 요소다. 하지만 방송이 만들어내는 메시지와 표현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미와 사회적 기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프로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