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천 구의 미륵 석불이 하룻밤 새 세워지면 수도가 바뀌리라. 그들의 동경, 그들의 상상이 바로 용화(龍華)세계로 화하리라.' (요헨 힐트만 '미륵, 운주사 천불천탑의 용화세계' 중에서)
불교에서 미륵불(彌勒佛)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석가모니불이 과거 깨달음을 얻어 중생 구제에 나섰다면 미륵불은 미래에 나타나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한다. 서양 사상으로 보면 '메시아'와 동격인 셈이다. 비록 현신하는 시기가 무려 57억년이나 지나야 하지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과거 미륵불은 언제나 힘없는 자들에게 희망이요, 등불이었다. 그래서일까. 미륵은 항상 민초들의 저항 운동과 긴밀히 결합해왔다. 황석영의 대하소설 '장길산'에서 미륵은 "열성으로 믿고 따르면 개벽을 일으키는" 존재였고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에서 동학의 접주들이 백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제일 먼저 행한 일도 미륵불의 배꼽에서 비결을 꺼내오는 것이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배계층들이 미륵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였던 데는 미래의 구원이 가져올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런 미륵 불상이 도처에 깔려 있는 신비로운 절이 있다. 한때 천 구의 불상과 천 기의 탑이 존재해 '천불천탑(千佛千塔)'이라 불렸던 전남 화순 운주사가 그 주인공. 언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불상을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린이가 도화지에 그려 놓은 것 같이 소박한 석불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다른 어느 불상에서도 찾을 수 없는 투박하고 편안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전남도와 화순군이 이 운주사의 석불과 석탑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이달 중 잠정목록 신청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하기로 했다고 한다. 석불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면 운주사의 왼쪽 능선에서 천년 동안 거꾸로 있었던 '누운 부처(臥佛)' 부부는 어떤 생각을 할까. 혹시 긴 잠을 털고 벌떡 일어나 이 땅의 모든 갈등과 눈물을 없애주는 은혜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