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팀의 자충수/정경부 김준수 기자(기자의 눈)

심판이 없는 경기는 난장판이 되게 마련이다. 중재자가 없는 싸움은 끝장이 날 때까지 계속된다. 이해당사자들이 거칠면 거칠수록 심판 또는 중재자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기아사태가 세력다툼의 양상으로 변질되고 있다. 링 위에서는 기아그룹과 채권은행단이 경영진 사퇴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고, 링 밖에서는 자동차업계의 터줏대감인 현대, 대우와 신참인 삼성이 서로 견제하고 있다. 정작 문제는 심판 또는 중재 역할을 해야할 정부가 한쪽 편에 가담했다는 데 있다. 기아사태는 이제 네편 내편을 갈라 서로 헐뜯고 비방하면서 끝장이 날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된 느낌이다. 김선홍회장을 비롯한 현경영진과 노조가 금융기관의 지원없이 홀로 설 수 있다면 매우 다행이다. 반대로 이들이 물러나고 채권은행단이 새로운 전문경영인을 영입, 갱생의 길로 들어선다면 그것도 다행이다. 자동차업계가 마찰없이 기아그룹을 「소화」해 내는 것도 어렵긴하나 조심스레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같은 회생의 길을 가기보다는 소위 「갈 때까지 갈」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이 와중에 기아의 협력·하청업체들은 무더기로 쓰러지고 기아의 몸체마저 만신창이가 될 것이 뻔하다. 회사를 도산위기에 빠뜨린 기아경영진들의 몰염치와 무책임도 문제지만 스스로의 의무를 포기한 정부도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진작 나서서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재해야 했는데 뒤늦게 합류하면서 한쪽 편만 드는 통에 공연히 싸움만 부채질하는 꼴이 됐다. 더욱 한심한 것은 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과 임창렬 통상산업부장관이 제3자 인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힌 지난 5일 재경원은 「기아 법정관리 및 산은출자후 제3자인수 추진」의 내용을 담은 파기된 문건을 유출했다. 통산부는 「기아를 제3자가 인수하더라도 통상마찰의 소지가 없다」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 의혹을 증폭시켰다. 시나리오설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기아경영진의 정치논리에 정부가 스스로 휘말려 맞장단을 친 셈이 된 것이다. 「주식회사 한국」은 올들어 굵직한 자회사를 벌써 7개나 무너뜨리고 수많은 협력·하청회사들을 도산시키는 등 총체적 위기에 휩싸여 있다. 「한국주식회사」의 전문경영인 격인 현경제팀은 어떤 책임을 물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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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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