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인도 방문을 수행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19일 귀국과 동시에 바로 명동 본사로 향했다. 임 회장은 이건호 국민은행장과 심재오 국민카드 사장을 불러 카드거래 고객의 정보유출과 관련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휴일임에도 KB의 수뇌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사고처리반으로 전락하고 있다. 계속되는 내부통제 사고와 지배구조를 둘러싼 갈등에 경영전략은커녕 사고 뒷수습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 최근 금융사 CEO들의 모습이다.
당장 KB는 옛 국민·주택 합병 이후 "최악의 위기 상황"이라고 내부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카자흐스탄 뱅크오브센터크레디트(BCC) 부실 의혹과 도쿄지점 부당 대출, 국민주택채권 횡령에 이어 국민카드 고객정보 유출까지 겹치고 있는 탓이다. KB CEO들은 사고상황 분석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다른 현안은 제대로 신경 쓸 여력이 없을 정도다.
실제 이 행장은 지난해 11월 대국민사과를 시작으로 내부통제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KB금융지주도 사고 재발방지를 위한 조직문화 쇄신위원회를 출범시켰고 KB국민카드는 심 사장이 현황 파악과 금융감독원 검사 대응에 다른 업무는 사실상 챙기지 못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KB계열 전체적으로 잇단 사고에 중장기 경영전략은 챙기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인수합병(M&A) 같은 주요 업무를 놓칠까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KB금융은 국민은행의 잇단 사고 이후 우리투자증권 계열사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전산 관련 사고 때마다 이름을 올리는 농협 측도 정신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악의 전산사고 대란에 이어 이번에도 롯데카드 등과 함께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이 발생해 거래고객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회장 선출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최근에는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이 명예회복과 복직을 요구하자 "신한 사태 관련자들은 반성해야 한다"며 직접 사태수습에 나섰다. 회장이 직접 챙겨야 할 정도로 신한 사태의 그림자가 아직도 조직에 드리워져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신한의 경우 또 한 차례 지배구조를 둘러싼 소용돌이가 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금감원의 대대적인 종합검사를 받은 하나금융도 검사결과에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금융감독 당국이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의 그림 구매 등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하나금융을 관리해온 김 전 회장의 일이라는 점에서 김정태 현 회장이나 김종준 하나은행장 입장에서는 신경이 안 쓰일 수 없는 부분이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쌍용건설 같은 대기업 구조조정과 우리금융 민영화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업무는 제대로 처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사업 비중이 큰 쌍용건설에 대한 법정관리 신청 여부 등을 두고 금융사 간 이견이 나오고 당국과 마찰을 빚으면서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우리은행이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금융 민영화 작업에서도 배임 문제를 걱정하는 사외이사들 때문에 업무처리가 쉽지 않다.
금융감독 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최근 금융사들 CEO들은 사고 뒤처리에 정신이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최근의 잇단 사고는 무엇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