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전자투표제 의무화 반대한다


주주가 전자적 방법으로 주주총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전자투표제도는 주주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위해 2010년 5월부터 시행됐다. 주주의 의결권 행사는 본인이 직접 하는 방법 외에 대리인을 통한 방법과 서면투표에 의한 방법이 있지만 전자투표제도는 보다 간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으로서 의미가 크다.

기업민주주의 거스르는 새로운 규제

그러나 전자투표제도는 이사회 결의에 따라 회사 자율로 채택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제도를 도입한 회사는 현재 40개사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페이퍼컴퍼니인 선박투자회사가 대부분이다. 상장업체 가운데는 중국 투자기업 1곳이 유일한 상황이고 정작 국내 대기업은 전무하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기업들로부터 외면받은 전자투표제도를 의무화하는 정책 기조가 이뤄지고 있고 관련 법안도 현재 국회에서 심의 중이다. 이대로라면 상장법인과 같은 일정한 회사는 의무화 규정에 따라 전자투표제도가 강제적으로 도입되게 된다.


전자투표제도는 물론 주총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소액주주가 인터넷을 통해 간편하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지배주주를 견제할 수 있고 주총이 특정일에 몰리는 경우 다수의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제도인 것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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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자투표의 활성화를 위해 이를 강제적으로 도입시키는 방법과 수단에는 문제가 있다. 첫째 전자투표제도의 의무화는 기업 민주주의에 반한다. 의무화에 따라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강제성이라는 규제 수단이 기업의 자율과 민주주의 질서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둘째 그동안 주총이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주주의 경영 참여 인식 부족과 책임 의식 부족 등에도 큰 원인이 있으므로 전자투표를 의무화시켜도 주주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는 한 주총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도리어 주주의 무책임한 투표나 충분히 정보와 내용을 알지 못한 채 한 투표는 양적으로 투표율이 상승할지라도 주주 의결권의 질은 이전보다 저하될 수 있다.

셋째 전자투표제도의 의무화는 실제 주총 활성화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 있다. 주주의 적극적인 주총 참여를 위해 1999년 12월에 도입된 서면투표제도의 경우 전체 의결권 행사 주식 중 서면투표를 행사한 비지배주주의 주식은 0.2%에 불과해 그 성과는 기대 수준을 크게 밑돌았다. 이러한 사실에서도 입증하듯 전자투표제도의 의무화 역시 상당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소액주주 주총참여 유인책 우선돼야

넷째 전자투표의 의무화는 오히려 주주의 의결권 행사를 제약할 수 있다. 해킹과 같은 불안정한 요소가 여전히 존재해 의결권 행사의 장애나 제약이 될 수 있고 컴맹이나 신체적 장애 등의 이유로 전자투표를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 주주들은 원천적으로 전자투표의 기회를 박탈당한다. 다섯째 전자투표제도의 의무화는 다른 주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우리보다 먼저 전자투표제도를 도입한 많은 선진국도 회사 자율로 전자투표를 시행한다는 점에서 전자투표의 의무화는 국제 조류에도 반한다.

전자투표제도는 시간ㆍ비용의 절약과 편리성 때문에 유용한 제도다. 그러나 전자투표제도는 지금처럼 회사의 개별 사정을 고려해 자율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 운영이 바람직하고 강제적인 도입은 재고돼야 한다. 강제성이나 의무성을 부여하는 것은 타율적인 회사 운영으로 회사가 자칫 주총 관련 업무의 책임을 회피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오히려 주총의 형식화 문제와 소액주주의 보호를 위해서는 원인별로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고 기업 스스로 전자투표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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