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원·달러 환율이 1,010원 선마저 무너지며 환율 세자릿수 시대 진입이 임박했음을 예고했다. 환율은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당 1,050~1,200원대에서 오르내리기를 거듭했고 3월 말에도 1,080원대이던 원화 값이 이후 불과 100일 남짓한 기간에 달러당 70원, 6.6%나 뛰어올랐다. 외환 당국은 이 기간 급격하게 원화 값이 오를 때마다 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방어했다. 그 결과 6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은 3,665.5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 전문가들은 앞으로 환율이 더 떨어져(원화 가치 상승) 수출 기업에 충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최근 원화 가치가 급등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주요 원인 중에 하나는 우선 27개월째 흑자를 이어가고 있는 경상수지가 원화 가치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올 들어 1~5월 중 경상수지 누적 흑자액은 315억달러에 이른다. 경상수지가 장기간 흑자를 내 국내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외국인투자가나 기관투자가들이 환율 하락을 예상해 환투기 세력에 가세하지 않겠는가. 최근 주식 및 채권시장으로 들어오는 달러 자금도 환율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경상수지 흑자가 이렇게 큰 상황에서는 외환 당국도 시장개입만으로 버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 재무부 및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환율정책에 대해 지속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도 정부로서는 부담된다. 원화 값 세자릿수 진입은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원화 강세는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시한 양적완화로 시장에 달러를 많이 풀면서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신흥국 통화 가치는 오르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되는 환율전쟁은 선진국과 신흥국들이 공격적인 환율 조작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신흥국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를 매입해 달러 값을 올리면 미국은 양적완화로 채권을 무제한 매입해서 달러 약세를 유도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로 쏟아져 들어오는 미 달러화를 신흥국이 억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신흥국은 국제통화를 발행할 수 없지만 미 연준은 국제통화인 달러화를 무제한으로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환율전쟁에서 유리한 입장에 있다. 이것이 원화 가치가 상승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일본까지 당분간 돈 풀기를 중단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달러 가치가 오르고 원화 가치 상승을 막을 요인이 되겠지만 인상 시기가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 같다.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양적완화는 끝내더라도 앞으로 한동안 제로 금리 수준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달러화 푸는 것은 계속할 뜻을 밝혔다. 지금까지 연준이 추진해온 비전통적인 양적완화 대신 전통적인 통화증발로 대체하겠다는 것 같다. 따라서 원화 가치는 앞으로도 계속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의 양적완화가 세계경제에 미칠 영향은 분명하다. 장기자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고 한국 등 통화정책 기조가 덜 팽창적인 국가나 수익률(금리)이 높은 신흥국으로 달러자금이 유입될 것이다. 자금 유입이 급증한 국가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통화가치가 절상되도록 내버려둬 대외경쟁력에 손실을 입거나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불필요한 달러화를 축적해 국내의 물가 안정을 해칠 수 있다. 또는 자본 통제를 통해 환투기 자금 유입을 억제하는 등의 선택을 해야 한다. 한국은 이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단기적으로 원화가치 상승 속도를 완만하게 조절하는 대책을 보다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벌써 15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최근 원화가치 급등에는 초연하다. 아마 미 연준이 금리를 올리기만 기다리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미 연준은 한동안 한국은행보다 약 2%가량 낮은 저금리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낮추고 통화증발을 통해 선진국들의 원화가치 상승 압력에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