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신년 인터뷰] 이희범 경영자총협회 회장

"선거의 해 맞아 정치권 포퓰리즘 정책 급증… 노사관계 악영향 우려"<br>勞 정치참여 본격화로 노조법 재개정 등 각종 요구 봇물 이룰 듯<br>정치권 지나친 개입 막고 노사자율 대원칙 아래 법치주의 구현 힘쓸 터<br>복수노조·타임오프제도 안착에도 최선 다할 것



"2012년 노사관계는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올해는 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된 세계경제 위축과 총선ㆍ대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일정 등이 기업경영과 노사문제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히 노동계가 적극적인 정치행보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의 노동계 편들기 행보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희범(63ㆍ사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5일 서울 남대문로 STX남산타워 집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올해 노사관계를 이같이 전망했다. 무엇보다 이 회장의 가장 큰 걱정은 지금까지 우리 역사상 각종 선거가 노사문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한 측면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올해 경총이 중심을 잡고 노사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과 요구를 막아내는 역할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경총은 올해 합리적이고 공정한 노동정책의 지킴이 역할에 충실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경총은 정치권의 노동계 편향적 입법 추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기업단위 노사관계에 외부세력의 개입을 막는 한편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구현을 위해 힘쓸 겁니다."

이 회장은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이 부쩍 늘어나며 노사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노사관계 법ㆍ제도 개선이나 개별 기업의 노사문제에 대해 정치권이 포퓰리즘 정책으로 나설 경우 노사관계가 왜곡되고 노사불안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총이 최근 회원기업 302개사의 인사ㆍ노무담당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6.5%는 올해 노사관계가 지난해보다 불안해질 것이라고 답했다. 지난해보다 안정될 것이라는 응답은 8.8%에 불과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있는 올해 노동계가 정치세력화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에 이어 한국노총이 민주통합당에 참여해 자신들의 요구를 당 정책에 제도적으로 반영시킬 수 있는 창구를 확보했기 때문에 양 노총의 정치참여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과정에서 노조법 재개정 등 노동계의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고 이를 정치권이 일방적으로 수용할 경우 노사관계 선진화와 노사자율의 원칙이 크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이 회장은 선거 정국에서 개별기업의 노사문제를 정치권ㆍ시민단체 등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제2의 한진중공업 사태가 빈발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한진중공업 사태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고공 크레인 농성과 희망버스를 통한 정치권ㆍ시민단체의 개입 속에 무려 352일이나 지속되다 가까스로 해결됐다. 이 과정에서 노사자율의 대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개별기업 노사문제는 법 테두리 안에서 이해당사자인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인들이 기업 내부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정치권에서 인기영합을 위해 노사관계를 왜곡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균형 잡힌 정책을 통해 노사 스스로가 상생의 노사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며 "경총은 외부세력의 불법적인 개입에 대해서는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도록 철저하게 지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은 과거 우리 노사관계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된 복수노조와 근로시간면제한도(타임오프)제도를 안착시키는 일도 올해 노사관계의 주요 이슈로 꼽았다. 2010년 7월에 도입된 타임오프제는 노조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노사교섭ㆍ산업안전ㆍ고충처리 등 노무관리적 성격이 있는 업무에 한해 근무시간으로 인정해 이에 대한 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복수노조제도 역시 13년간 유예돼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됐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복수노조와 타임오프제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과거와 같이 노조 전임자가 사업장 내 특권층으로 군림하기 어려워졌으며 소수 강경파를 위한 노동운동에도 제동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올해입니다. 여전히 노동계는 노조법 재개정을 주장하고 있고 이것이 총선ㆍ대선 국면과 맞물려 혼란을 줄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타임오프ㆍ복수노조의 정착 기조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노사관계 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노사 모두가 더 이상 과거의 불합리한 관행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이 회장은 또 복수노조는 이제 시작단계로 향후 안정적 정착을 위해서는 교섭창구 단일화와 함께 지나친 노조의 난립 및 노노 간 과당경쟁을 막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복수노조가 시행되며 한 항공사에 17개의 노조가 생겼고, 결국 노노갈등으로 회사가 문을 닫았다"면서 "반면 일본의 한 조선사는 무려 32개의 노조가 생겼는데 노조위원장이 이러다 다 죽는다며 노조를 통합해 현재 회사가 건재하다"고 소개했다. 복수노조와 관련해 노노갈등이 발생하거나 노조가 지나친 선명성 경쟁에 치우칠 경우 노동자는 물론 회사도 다 죽게 된다는 얘기다.

올해 기업들의 신규 고용과 관련, 이 회장은 "유럽 재정위기 확산과 미국 경기회복의 불확실성 등으로 기업의 일자리 창출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특히 제조업은 지난해 8월부터 취업자 감소세를 보이고 있어 올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는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과보호를 해소하고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고용 보호와 임금이 경직적이어서 일자리 창출 여력이 더욱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따라서 사내 하도급 및 파견, 기간제근로 활성화 등을 통해 고용형태의 다양화를 모색하고 현행 연공급 중심의 임금체계를 근로자의 직무와 생산성을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은 비즈니스 사이클과 노동시장의 여건에 따라 고용규모를 조정해야 하는데 기존 정규직에 대한 보호가 워낙 강하니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이라며 "결국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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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청년실업과 관련해 청년 구직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청년실업은 주요 선진국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것은 청년층의 고학력화로 인한 미스매치 현상 때문입니다. 학력이 높은 청년층은 공무원이나 대기업 정규직만을 선호해 취업난이 가중되는 반면 산업현장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해 50만명이 넘는 외국인 인력조차 더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인생선배로서 조언하건대 눈높이를 낮추고 조금 힘들거나 임금이 약간 낮아도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실제로 전문대에 가보면 전문지식을 갖추고 눈높이를 조금 낮춰 취업률 100%를 기록하고 있는 곳이 상당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교육에 대한 과잉투자를 해소하기 위해 학생들이 조기에 실용 중심의 직업관을 확립하고 다양한 진로를 선택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의 공생발전 대책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공생발전의 기본취지와 당위성을 부정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공생발전이 지나치게 시장경제 원칙을 저해하거나 기업 자율을 압박하는 규제 위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업 경쟁력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 명분에만 집착하는 정책은 그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국가경제에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따라서 정부는 시장경제와 기업 자율의 바탕 위에서 성장과 공생의 균형을 적절히 맞춘 정책 집행으로 경제 활력과 기업 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공직·산업계·학계 두루 거쳐 다양한 경험·풍부한 네트워크… 경제단체 수장만 2회 진기록

● 이희범 회장은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만큼 국내에서 공직과 산업계ㆍ학계를 두루 거친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경제5단체 가운데 한국무역협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2개 단체의 수장을 맡는 진기록을 세운 것도 각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경험과 풍부한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워낙 다양한 분야를 거치다 보니 그에 대한 호칭도 많다. "그동안 여러 직업을 거쳐 뭐라고 부르면 좋겠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학(서울산업대) 총장을 8개월 동안 해 학계 사람을 만나면 지금도 총장이라고 부릅니다. 과천 관가 사람들을 만나면 아직도 장관(산업자원부 장관)이고요. 회장은 꽤 오래했습니다.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1년, 한국무역협회 회장 3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1년반, STX 회장 3년 등 회장은 모두 10년 가까이 했습니다. 기간으로 보면 회장으로서의 관록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이 회장은 장관ㆍ총장ㆍ기업인 가운데 가장 애착을 느끼는 호칭은 단연 기업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산업자원부 차관을 그만둘 때 이임사에서 진정한 기업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는데 공직자 윤리법상 바로 기업으로는 못 갔고 대학 총장, 장관, 무역협회장을 다 끝내고 족쇄가 풀려 기업으로 가게 됐다"면서 "스스로 나는 기업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당시 이임사를 통해 '과천이라는 직장을 떠나지만 무역과 산업이라는 직업은 가져간다. 나는 산업과 무역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회고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후배 공무원들을 만나면 기업 입장에서 '역지사지'로 생각하는 정책을 내놓을 것을 늘 주문한다고 했다. "고시에 합격한 공무원들이 지난해 우리 회사(STX)에 연수를 왔기에 제가 첫날 강의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후배들에게 공직에서 물러난 뒤 기업에 와서 보람 있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처음에는 공직을 거쳐 기업에 가면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저를 보고 모델로 삼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기업에 와보니 기업 일을 하면서 얼마든지 국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해외사업을 수주해 외화를 벌어들이고 국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며 세금도 내고 얼마나 멋있는 일입니까."

2010년 경총 회장직을 고사하다가 끝내 수락하게 된 뒷이야기도 소개했다. 이 회장은 "기업에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총 회장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처지가 안 된다며 몇 달 동안 고사했다"면서 "하지만 경총 회장단과 원로들이 집무실로 직접 찾아와 회장을 맡기 전까지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겠다고 버텨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 역시 그의 경륜과 전문성, 글로벌 네트워크를 높이 사 영입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현재 STX중공업ㆍ건설 회장을 맡아 STX의 해외 플랜트 및 도시개발사업 수주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기업 오너는 물론 재계 원로들까지 삼고초려하며 영입에 나선 것만 봐도 그에 대한 재계의 신망이 얼마나 두터운지 알 수 있다.

● 약력

▦1949년 경북 안동 ▦1967년 서울사대부고 졸업 ▦1971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1972년 제12회 행정고등고시 수석합격 ▦2001년 산업자원부 차관 ▦2002년 한국생산성본부 회장 ▦2003년 서울산업대 총장 ▦2003년 산업자원부 장관 ▦2006년 한국무역협회 회장 ▦2006년~현재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2009년 STX에너지 총괄회장 ▦2010년 STX에너지ㆍ중공업 총괄회장 ▦2010년~현재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2011년~현재 STX중공업ㆍ건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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