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炳璨(경원대 교수)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욕망의 해방구」라는 새로운 대명사가 생긴 때는 1990년대 초반이다. 그보다 10년 앞선 80년대 초반 같은 자리에는 기성세대에 의한 「압구정 문화」가 생겨났었다. 새 아파트군과 신중산층을 겨냥한 의상실등이 일대에 들어서 소비문화의 메트로폴리스로 자리잡는듯 했다.
그러나 기성세대의 압구정동문화는 80년대의 첨예한 정치적 분위기로 갈아앉아 버렸다. 90년대들어 새롭게 떠오른 압구정문화는 세대를 바꾼 것이었다. 신중산층 2세로 구성된 압구정족은 「단군이래 최초의 신세대」로 여겨졌으나,경직된 기성세대의 윤리적 시각으로는 소비와 향락을 지향하는 신세대 풍속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문화현상 분석가들은 압구정족이 풍속화한 「욕망의 해방구」는 밖으로 냉전체제가 붕괴하고 안으로 진보세력이 위축한 자리에 보수 안정 회귀성향의 사회분위기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수면위로 떠올랐다고 보았다.
욕망의 해방구는 90년대 한국 자본주의 사회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문화현실의 현장이라는 분석이었다. 80년대식 시각이나 기성세대의 윤리관으로는 내용을 포착할 수 없는 소비문화 풍속이었다.
압구정족의 하위문화는 그렇게 나타났었는데, 90년대를 관통한 청년문화의 주류는 홍대 앞을 중심으로한 언더그라운드 및 인디펜던스 문화운동, 창조자와 수용자가 함께 어울려 만들어 가는 청년문화 운동이다.
그런데, 세기말의 1999년에는 청년 가운데서 또 무엇이 발생하고 있는가. 기성세대의 「훈계」와 「기획」에 넌더리를 내는 신세대의 관심은 어떻게 분출하고 있는가. 대학생들 속에 만화가 지망생이 급증하는 현상도 새 물결의 하나이다.
대학중심으로 수 많은 만화동아리가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만화열기의 분출은 전국 25대학에 만화학과가 생겼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게다가 2000년에는 만화고등학교까지 생긴다. 경기도 하남시에 이미 설립인가를 받아 교명을 「한국 애니메이션고등학교」로 확정한 경우도 있다.
인간의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연재만화 「디스」등은 문화관광부에의해 「오늘의 우리만화」로 뽑혔으니 만화는 제도권도 주목하는 대상이다. 청년문화 중심에 들어선 만화, 이제 대학 만화동아리들은「걸개그림」같은 선전물 제작단계를 벗어나 개인 위주의 창작활동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다. 영상세대가 행하는 또 하나의 반란이다. 청년이 주도하는 대중문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