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일본 가마쿠라·센다이, 800년 대불의 위용… 화려했던 막부시대 보란 듯

야인의 땅 가마쿠라서 무인정권 출발

360도 전망 등대 등 '신사의 섬' 매력

전국시대 동북을 지배했던 센다이

소나무 숲으로 덮인 260개의 섬 장관

한일, 내년 국교정상화 50주년 맞아

"양국 상호 인적교류 700만명 목표로"

고도쿠인 가마쿠라대불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일본의 첫 무인정권이 가마쿠라 막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자랑하기 위해 높이 13.4m의 이런 거대한 불상을 세웠다.

센다이 인근 시오가마시에서 대지진으로부터 회복을 뜻하는 ''부흥상점''을 배경으로 현지 주민들이 관광객들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지난 3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관광교류 확대 심포지엄''에서 한일 정부·지자체·업계 관계자들이 ''가가미비라키''라는 일본의 전통이벤트를 하고 있다.

이웃 일본과 한국의 관광 등 상호 인적교류는 최근 몇 년간 500만명선에서 정체돼 있다. 상대국에 대한 방문자도 각각 250만명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양국은 교류인원을 늘리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는 보다 많은 관광객을 자국으로 유치하려고 하지만 쉽지는 않다. 고질적인 역사·영토 문제에다 널뛰기하는 환율이 장애요소다. 여기에 상대방의 관광지에 대해 볼 것은 다 봤다는 기본 인식도 한계다. 양국 관광업계가 내세우는 것은 지방관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한국에는 서울과 부산 외의 지방을, 일본도 도쿄와 오사카·교토·후쿠오카 이외를 추천하고 있다. 일본은 최근 미야기현 등 동북지방 판촉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11년 3월 동북대지진과 원전 방사능 사고로 관광불모지가 돼버린 것을 한국관광객을 기반으로 일어서겠다는 것이다.

◇무인정권의 시작, 가마쿠라=도쿄에서 서남쪽으로 30㎞ 거리에 가나가와현 가마쿠라시가 있다. 일본에서도 지명으로서 '가마쿠라(鎌倉)'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인으로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일본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 이름에 친근하다. 바로 일본의 첫 무인정권이 바로 가마쿠라 막부이기 때문이다. 이 막부를 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근거지로 해서 자리잡은 곳이 가마쿠라이기 때문에 막부 이름도 가마쿠라 막부로 불린다. 가마쿠라 막부 시기에 지금의 도쿄는 어떤 '도시'로서 존재하지 않았다. 가마쿠라 동쪽은 당시로서는 야인들의 땅이었던 셈이다. 일본 조정이 1192년 미나모토에게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오랑캐를 정벌하는 대장군이라는 의미)이라는 호칭을 주었고 이것이 공식적인 가마쿠라 막부 성립으로 된다. 미나모토는 가마쿠라를 근거지로 일본을 지배하게 된다.


가마쿠라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 중의 하나가 '고도쿠인(高德院) 가마쿠라대불(大佛)'이다. 높이가 무려 13.4m로 불상으로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한다. 이 대불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247년이다. 가마쿠라 막부정권(1192~1333년)이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다. 즉 막부가 가진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러한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불상은 원래 목조였다고 한다. 1247년 목조로 만들었는데 태풍으로 파괴됐고 그 뒤 1252년 청동으로 제작한 것이 지금의 불상이다. 나이가 800년 가까운 불상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가마쿠라 인근에는 이외에도 볼거리가 많다. 주요한 것으로는 에노시마(江の島)라는 섬이다. 둘레가 4㎞ 되는 작은 섬인데 섬 안에는 3개의 신통한 신사가 있어 '신사의 섬'으로도 불린다. 360도 전망의 등대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거리, 기념품 가게가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원래는 썰물 때만 길이 나타나는 지형이었지만 관동대지진으로 섬이 융기한 후로는 항상 육지와 연결돼 있는 섬 아닌 섬이 돼 버렸다.

◇동북의 지배자, 센다이=일본 도쿄를 기준으로 동북쪽에 위치한 아모모리·이와테·미야기·아키타·야마가타·후쿠시마 등 6개 현을 일본에서는 '동북(東北·도후쿠)지방'이라고 부른다. 동북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하면 미야기현 센다이(仙臺)를 들 수 있다. 센다이도 가마쿠라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론 무인이 건설한 도시다. 일본은 한반도와 가까운 규슈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팽창해왔는데 12세기 가마쿠라, 16세기 도쿄(당시의 이름은 에도·江戶)를 거쳐 드디어 17세기에는 동북지방까지 세력을 펼쳤다.


1610년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라는 전국시대 무장이 센다이에 자신의 성을 쌓고 동북지방을 지배하는 영주 노릇을 하면서 이 도시가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다만 그가 쌓은 센다이성은 350여년을 버티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완전히 파괴되고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다테 마사무네는 우리나라와도 악연이 있는데 임진왜란 때 참전해 진주성 전투에서 악명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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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다이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일본 3대 절경의 하나라는 마쓰시마(松島)가 첫째이고 동북대지진과 원전사고의 여파로 남아 있는 부정적인 인식이다.

소나무가 많다는 '송도'라는 이름은 동북아 3국에서 흔한 이름인데 센다이의 마쓰시마가 특별한 것은 소나무로 뒤덮인 260여개의 섬들이 다도해를 이루면서 절묘한 풍경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섬마다 특이한 모습으로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면 '종도'는 섬에 뚫린 4개의 구멍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종처럼 들린다고 이름 붙었고 '갑옷섬'은 갑옷의 어깨 보호대처럼 생겼다. 센다이가 벗어나기를 원하는 이미지는 방사능이다. 센다이는 당시 대지진에 이은 쓰나미로 큰 피해를 입었고 곧 방사능에 휩싸였다. 다만 센다이시 관계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방사능 수치가 이제는 정상치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폭발사고는 이미 3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있다. 후쿠시마는 이 센다이가 속한 미야기현의 바로 남쪽에 붙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다이는 여행객들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아까운 여행지임에는 틀림없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상호 교류 700만명 목표=내년 2015년은 한국·일본 국교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다. 그동안 강산이 다섯 번 변했고 원래 중요한 이웃이었던 양국관계도 더 중요해졌다. 다만 최근 몇 년간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이 아쉽다. 역사문제가 여전히 꼬여 있고 '아베'라는 극우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물을 흐리고 있다. 인적교류는 여전히 정체다.

관광 등을 이유로 한일 양국을 상호방문한 인원은 2010년 총 546만명으로 500만명선을 사상 처음 돌파했지만 2013년은 520만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올해 1~10월 기준으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4% 줄어든 417만명에 그치고 있다. 이중 방한 일본인은 193만명이고 방일 한국인은 224만명이었다.

이의 타개책으로 올 8월 서울에서, 그리고 12월3일에는 도쿄에서 한일의 정부·지자체·관광업계가 참석한 '한일 관광교류 확대 심포지엄'이 열렸다. 목표는 상호 인적교류 700만명이다. 물론 이 수치는 몇 년전에 이미 달성해야 할 목표였지만 자꾸 늦어지면서 여전히 목표로 남아 있다. 교류인원을 200만명 더 늘려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는 않다.

물론 기회는 있다. 각국의 수도와 대도시에 집중된 관광기회를 지방 중소도시로 확대하는 것과 함께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등 굵직굵직한 행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도쿄·가마쿠라·센다이=글·사진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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