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 죽음 내모는 합수단 포퓰리즘

무리한 수사로 4번째 자살 불러

비리규모 뻥튀기, 군 신뢰도 추락

장관·의원 직무유기 말고 제동 걸어야


권홍우 칼럼

합수단의 포퓰리즘과 쌓여가는 죽음


단순 실수를 무리한 수사, 4번째 자살

비리규모 뻥튀기, 군 신뢰도 추락 낳아


장관과 의원들의 직무유기, 제동 걸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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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운 목숨이 또 사라졌다. LIG 넥스원의 김모 수석연구원.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의 수사에 시달리던 그는 지난 14일 아파트 23층에서 몸을 던졌다. 죽음을 택하기 직전 그가 아내에게 남긴 문자 메세지의 마지막이 귓전에 울리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전해주오. 아빠는 부끄럽게 살지 않았다고.” 잠든 아이들을 뒤로 한 채 투신한 그의 심정이 궁금했다. 주변 평판은 하나 같았다. ‘책임감이 강해 출장에서 돌아와서도 밤샘 야근을 자청했던 사람, 남에게 폐 끼치기를 극도로 꺼렸던 사람.’ 마지막 문자 메세지에도 비슷한 내용이 담겼다. ‘잠시의 실수로 아무 죄도 없는 ADD(국방과학연구소) 에 누를 끼쳐 미안하다.’

내막을 알아봤다. ‘잠시의 실수’는 무엇일까. 그를 죽음으로 내몬 이유는 ‘단거리 유도무기 관련 비리.’ 감사원이 파헤쳐 합수단에 통고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ADD가 대전차 미사일을 개발하고 LIG 넥스원이 생산을 맡아 실험사격까지 마쳤는데 감사원 감사에 문제가 드러났다. 현역 목록에서 제외된 M-48 전차와 우방국을 통해 비밀리에 수입한 적성 전차에 대고 십수차례 사격한 결과는 대성공. 신형 미사일은 야지에서 기동하는 표적을 100% 맞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LIG 넥스원의 협력업체인 경안전자가 꼼수를 부렸다. 리모트 컨트롤(RC)로 무선조종되는 전차의 내부에 탑재된 각종 계측 장비들은 한번 사격 후 버리는 일회용이었으나 일부를 재사용한 것. 분명한 잘못이지만 LIG 넥스원이나 ADD는 협력업체가 마음먹고 속이는 한 가려낼 방법이 없었다. 죽기 직전 김 수석 연구원이 언급한 ‘잠시의 실수’란 바로 협력업체의 부품 재활용을 가려내지 못했다는 자책이다.

과연 이런 사안으로 미사일 개발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과학자가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었을까. 망자의 속은 알 수 없으나 생전의 그가 중압감에 시달렸다는 점 만큼은 분명하다. 감사원 감사에 1년간 시달렸던 합수단으로부터는 최근 집중적인 조사를 받았다. 합수단의 입장은 확고한 것 같다. 죽음은 안타깝지만 방산비리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감사원과 합수단의 판단대로 이 사건이 ‘방산 비리’에 해당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법원조차 합수단의 관련자 체포 영장을 기각했다.

합수단의 무리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 합수단은 방산비리 수사 중간결과 발표 당시 공표한 ‘비리금액 9,809억원’부터 허구에 가깝다. 정확하게 말하면 비리와 연관된 사업비의 합계액이다. 당시 합수단 관계자와 문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가령 공사비 1,000억원인 공사를 뇌물 10억원을 써서 낙찰받았다. 합수단식 기준이라면 이 경우 비리 규모가 얼마인가”라고 물었더니 “1,000억원”이라는 대답이 서슴없이 돌아왔다. 합수단 발표 이후 국민들의 뇌리에는 ‘현역과 예비역 군인들이 1조원 가까운 돈을 해먹었다’는 인식이 뿌리박혔다. 뻥튀기도 이만한 뻥튀기가 없다.

군과 방산에 대한 신뢰 추락은 수년 전부터 되풀이되어온 ‘방산비리’가 재탕 삼탕을 넘어 수십번씩 거론되면서 증폭 일로다. 국산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수사 역시 합수단의 ‘새로운 비리’에 대한 갈망 탓인지도 모른다. 국민들이 공분하고 대통령이 ‘이적행위’라고 지적한 방산 비리를 캐면서 무엇인가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압감이 무리한 수사와 뻥튀기, 상처 또 도려내기의 배경이라는 얘기다. 합수단 출범 이후 자살은 김 수석 연구원이 처음이 아니다. 네번째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군과 방산에 대한 신뢰 추락이 국가적 손실, 안보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함에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 국방부 장관부터 방위사업청장,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직무유기다. 사태가 더 진전된다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누가 될 수 있다. 군의 기본수요가 끝나가는 방위산업이 수요 절벽의 위기에 봉착한 마당에 비리의 온상으로 각인되면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아버지가 일군 방위산업을 딸 대통령이 무너뜨리는 결과가 두렵다”며 “비리는 당연히 척결해야 하지만 있지도 않는 비리를 부풀리는 행위야 말로 이적행위”라고 말했다. 다시금 묻는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무리수이며 허구인가. 합수단의 포률리즘에 기반한 업적 만들기에 죽음이 쌓여간다./hongw@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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