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방어 법제 도입은 지난 2008년 출범 초기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과제였다. 그 결과가 법무부가 2009년 말 국회에 제출한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이었다. 포이즌필은 경영권 방어수단의 하나로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일어날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재계에서도 "외국자본의 '먹튀'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며 포이즌필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당시 법무부는 포이즌필 외에 차등의결권제 등 3~4개의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을 검토하다, 정부 내 의견과 시민단체 등 외부 반발에 밀려 포이즌필만 도입하는 것으로 결론 냈다.
당시 법무부가 마련한 포이즌필 제도는 미국ㆍ일본보다 행사요건을 까다롭게 한 일종의 절충형으로 마련됐다. 이른바 '한국형 포이즌필'이다.
구체적으로는 포이즌필 도입을 이사회의 결의가 아닌 주주총회 특별결의(출석 주식 3분의2 찬성)로 도입할 수 있도록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적대적 M&A 세력에 대해서만 신주인수선택권 행사 및 상환조건을 차별할 수 있도록 했다. 포이즌필을 오로지 적대적 M&A에 대응하기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엄격히 제한한 것이다. 또 대주주의 경영권 양도 목적으로 남용될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주주 배정만 허용하고 특정인을 위한 제3자 배정을 금지하는 한편 양도나 매매를 불허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대기업 오너의 경영권을 공고하게 하고 M&A를 통한 기업의 혁신을 어렵게 한다'는 시민단체와 야당의 반발에 부딪혀 법안심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폐기됐다.
법무부가 이번에 새로 도입을 추진하는 '신주인수권(워런트)' 제도는 포이즌필보다 한층 요건이 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1차적인 목적은 주식, 채권, 신주인수권부사채(BW), 교환사채(CB) 외에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을 다양화하기 위한 것이다. 현행 상법은 신주인수권을 발행할 경우 회사채가 붙어 있는 BW를 통해서만 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워런트 제도가 도입되면 신주인수권만을 단독으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신주인수권은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일 뿐 경영권 방어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고 말했다. 또 신주인수권을 받은 주주들은 이를 다른 투자자에게 양도하거나 매매할 수도 있다.
다만 신주인수권 발행이 허용되면 기업들은 자금조달 외에도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일반적인 신주인수권 제도는 법무부가 추진했던 기존 포이즌필과 달리 기존 주주뿐 아니라 제3자 배정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 경영권 방어를 위해 주주 지분 비율대로 신주인수권을 부여하지 않고 대주주에게 몰아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과거 대기업들이 BW를 발행하면서 제3자(대주주 또는 그 후계자) 배정 방식을 취해 경영권을 방어하거나 물려주는 방식이 신주인수권에도 원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법안은 국회 입법 과정에서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친재벌' 법안이라는 포화를 맞은 포이즌필에 대한 반대론이 신주인수권 제도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